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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생선 뜯다 밝혀진 그리스 시할머니의 엉뚱한 진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3. 26.

 

 

 

 

오늘은 그리스의 생선튀김과 마늘 소스를 먹는 국경일이었습니다.

사실 3월25일은 그리스가 터키 350년간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운동을 시작한 날입니다.

(참고글- 2013/03/26 - 생선튀김에 마늘소스를 꼭 먹어야하는 그리스의 비장한 국경일)

그런데 어제부터 갑자기 조금 추워진 날씨에 아침부터 비가 와서, 시내 퍼레이드 구경도 갈 수 없었고 올해는 날씨가 좀 이르게 따뜻하다 싶어 정원에서 하기로 했던 가족식사는 결국 집안에서 해야 했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집안 대청소를 하고 테이블을 차렸습니다.

 

 

두 시간 동안 꼼꼼하게 박박 집안 대청소를 하고,

테이블을 다 차리고 음식을 나르기 시작하자

갑자기 환하게 해가 떴네요.^^;;

 

 

 

어머님과 고모님들, 시누까지 함께 도와 여러 요리를 해서 날랐고, 오늘은 시할머님도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매니저 씨의 외할머니이신 제 시할머님이 좀 엉뚱한 분이시란 것은 이미 몇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한 다리 건너라 늘 재미있으신 할머님이 좋기만 한데, 전에도 언급했듯 저희 시아버님과 할머님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부갈등처럼 모계사회인 그리스에서는 장모님과 사위간의 갈등이 심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저희 시아버님은 처갓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그 후 10년 이상을 처가살이를 하시며 할머님이 워낙 남의 말에 신경을 안 쓰고 원하는 말을 하시는 대장부 같은 성격이시라 아버님은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으셨던 것 같습니다.

 

 

 

 

 

왼쪽 생선은 치뿌라Τσιπούρα라는 도미 종류의 생선을 바비큐그릴에 구운 것이고, 

오른쪽 생선튀김은 바깔야로스μπακαλιάρος라는 대구살을 튀긴것입니다.

 

 

이 날 부부나 연인들에게 뽀뽀를 기피하게 만든다는 강력 마늘 소스와 발사믹 샐러드입니다. 

오징어튀김도 함께 먹었어요.

 

 

외할머님과 고모님들, 고모님 가족들, 저희 식구들까지 오늘도 많은 인원이 모였는데요.

그렇게 모여 준비된 요리를 함께 먹는데, 여느 때처럼 할머님께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요르고스와 만나 거길 가려했는데, 아! 내 동생 요르고스를 말 하는 거야 우리 아들 말고 그게 빠스하(그리스 최대 명절 : 부활절) 전이니까 몹시 바빴는데 정신이 없었거든 우리는 거기에 가서 앉았고 뭘 좀 샀는데 그게 좀 비싸서 안 좋았어."

축하2

 

솔직히 할머님 말씀은 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할머님은 깔파쏘스 섬 출신이신데 심한 사투리를 쓰십니다. 게다가 큰 소리로 말을 하시는데도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말을 하시고, 앞뒤 정황 설명도 없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말을 하시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도 언제 그랬단 얘긴지 어디서 그랬단 얘긴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가족들은 할머님이 말씀을 하시든 말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혼자 말하시게 두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시아버님은 할머님 말에 신경도 안 쓰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할머님은 저렇게 혼자 계속 말을 하고 계셨고, 저는 그냥 좀 대꾸를 해드리고 싶어 할머님 말씀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그러니까 요르고스 할아버님과 작년 빠스하 전에 어딜 가셨단 말씀이세요?"

"아니 며칠 전에 갔다고!"

"아..하..하.. 하지만 아직 올해도 빠스하는 아직 안 지났는데요….할머님."

"그래. 그러니까 빠스하 전에 어딜 갔다고!"

"아. 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응? 뭐라고??????"

 

할머님은 마지막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 하셨고, 저는 또박또박 다시 발음해드렸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기에, 네 번 정도를 더 반복해서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그 때 제 옆에서 듣고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엄마! 올리브나무가 이렇게 말 한 거잖아요!" 라고 고향 사투리로 말을 해드리자, 단번에 알아들으시고 또 당신의 말을 계속 이어가셨습니다.

응응

 

그렇게 할머님은 혼잣말을 누가 듣든 말든 꼭 누군가에게 말하듯 계속 하셨고, 또 가족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할머님께서 갑자기 말을 멈추시고 식사 중간에 벌떡 일어나시더니, 정색을 하시곤 혼자 정교회에서 외우는 어떤 기도문을 사투리로 막 외우시는 게 아니겠어요??

모든 식구들은 열심히 생선을 뜯다 말고, 순간 모두 동작을 정지하고 할머님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느낌표

할머님은 혼자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기도문 뒤에 붙이시더니, 다시 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할머님이 좀 걱정이 되어 시어머님께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기..할머님이 괜찮으신 거에요?

요즘 가만 보면 제 말도 잘 못 알아들으실 때가 많고 그러시던데…

아무래도 연세가 아흔 가까이 되셔서 청력에 문제가 생기신 게 아닌가 걱정이 돼요."

??

 

어머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올리브나무. 걱정 마.

네가 여기 처음 왔을 땐 우리 엄마 말을 다 못 알아 듣다가

지금은 사투리를 구분할 줄 알고 엄마 말을 알아들으니까 걱정이 더 되는 거야.

엄마는 네가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저랬어. "

하이2

 

"아..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제 말도 잘 못 알아 들으실 때가 있는 것 같아서요.

혹시 귀가 어두워지셔서 병원에 가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멍2

 

그 때였습니다.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시아버님은 마치 중요한 진실이라도 밝히듯, 바로 앞에 할머님이 계신데도 이렇게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걱정 마!

내가 살던 동네에서 장모님을 이웃으로 처음 봤을 때, 장모님은 삼십 대셨는데

그 때도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실 때가 많았어. 뭘 새삼스럽게 그러니.

평생을 남의 말에 귀를 잘 안 기울이시는 걸.

그냥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해석하신다니까."

 

 

저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씀 하시는 아버님이 가족들에게 혹시 타박이라도 받을까 너무 걱정되어, 어머님과 할머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는데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버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고,

심지어 할머님까지도 "그래. 뭐 내가 그런 편이지!" 라고 쿨하게 인정하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할머님은 젊은 시절부터 원래 잘 못 알아 들으시고 좀 엉뚱하게 말 하시고 혼잣말을 많이 하셨던 것이었던 것입니다...연로해 귀가 어두우신 게 아니고요....

 

파티 후 제가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자,

"가족들이 갑자기 다 일 나가서 니가 멀리까지 운전해 오느라 애 썼어. 나 버스타고 왔어도 되는데 말이지. 고마워. 기름값이야."

라며 안 받겠다고 극구 사양하는 제 손에 굳이 또 꼬깃한 돈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새로 이사온 이웃 분에게 " 내 손녀야. 인사들 해. 처음 보지들?" 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개하시는 할머님이십니다.^^

다행히 새 이웃분들은 이해심이 많은 분들인지, 아시아인인 저를 손주며느리가 아닌 손녀라고 극구 우기며 소개를 하셔도 웃으며 반겨주셨습니다.^^

 

오늘에야 할머님이 좀 젊어서부터 많이 엉뚱하신 분이시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런 엉뚱하고 쿨한 할머님이 저는 참 좋습니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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