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지는 잠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2013/04/01 - 초등학교에서 배워 클럽에서 추는 그리스의 전통 춤 <- 동수 씨가 친구 결혼식에서 춤을 추는 동영상이 있어요.^^)
보통 저녁 식사 무렵에 시작되는 피로연은 대개 새벽 2~3시 넘어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춤을 추는지 상상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전통춤으로 군무를 추는 것이니 그 열기는 대단한데요. 개인이 추는 춤 조차 군무 중간 중간에 둘러싼 관중 사이에서 추는 것이니까요.
그리스 결혼식의 전통 독무는 전통음악에 맞추어 추게 되어 있는데, 마치 한국의 학춤을 연상시키는 춤입니다.
큰 새가 천천히 리듬을 타며 날갯짓을 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특이한 점은, 맨 처음 춤의 시작은 신랑신부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때 축복의 의미로 가까운 하객들은 춤을 추고 있는 신랑신부에게 다가와 드레스나 턱시도 옷깃에 돈을 꽂아주기도 합니다.
그리스 결혼식의 경우 축의금을 따로 걷는 사람은 없지만 대개 봉투에 넣어 신랑 신부에게 혹은 부모님에게 주는 데요. 일부 하객들은 예식이 끝나고 피로연을 하길 기다렸다가 신랑 신부가 춤을 추고 있을 때 이렇게 돈을 꽂아 주곤 하는데, 이는 더 크게 축복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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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 9월에 참석했던 결혼식에서는, 평소 지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커플이었던지 피로연에서 춤을 출 때 돈을 정말 많이 받아서 신랑 신부의 옷이 유로화로 도배가 되었을 지경이었는데요.^^
(저도 이날 신부의 옷깃에 돈을 꽂으러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전 하객의 이목이 집중된 피로연 장소 중앙으로 나갔었는데, 이날 휴대폰 베터리가 나가 신랑신부가 돈을 꽂고 있는 사진은 찍을 수 없었기에 안타까웠어요.)
물론 이런 경우 신랑 신부가 밤새 돈을 매달고 춤을 출 수는 없으니, 첫 번째 춤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이 잘 챙겨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전달해주곤 합니다.
이렇게 몇 시간의 춤이 무르익을 무렵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하객들도 있기 때문에 식탁엔 식사와 디저트 접시가 다 치워지고 술이나 음료만 남게 되는데요.
이때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리스 결혼식의 신랑신부나 들러리들은 이 때에 식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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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나 들러리보다, 신부의 식탁 위 춤은 단연 돋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에서는 피로연 드레스를 따로 입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할 때 입는 그 불편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대로 피로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이기 때문에(그게 훨씬 결혼식답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그 불편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식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신부에게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결혼식이 1,000명 가까운 대규모라면 새벽 시간이 되어 그 중 다수가 집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신부의 춤에 환호하는 인원은 상당 수여서 그 환호하는 하객을 구경하는 것도 제겐 또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그리스인들이, '결혼식에서 신나게 춤춘 이유'에 대해 몇년 후까지 계속 언급하는 것이 참 신기했는데요.
바로 이런식으로 말을 하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서 네 결혼식에서 그렇게 춤을 열심히 췄다니까!"
이렇게 신랑신부뿐만 아니라 하객까지 열정적으로 장시간 춤을 추는 그리스 결혼식 문화는 아주 당연한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런 말을 계속 하는 것인지 이상했습니다.
알고보니, 이유는 그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의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아내에게 "커피 좀 한 잔 줄래요?"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아내가 이 사람의 커피취향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설탕과 크림, 커피 종류까지 딱 맞춰서 커피를 만들어서 이 사람 앞에 잔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고마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이 사람은 친구부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서 너네 결혼식에서 그렇게 춤을 열심히 췄다니까!"
제 결혼식은 한국 가족이 많이 참석할 수 없어, 동수 씨 가족 지인들도 최소한으로 초대해
하객 150~200명 정도의 소규모로 했기에, 피로연은 그리스 전통음식을 하는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내 친구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잘 할 줄 아는 좋은 아내를 둬서 친구로서 정말 기뻐서 춤을 출 수밖에 없었고, 결혼식이 몇 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내가 친구의 결혼을 기뻐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도 누군가 저에게 처음 이 말을 했을 땐, 분명 제게 하는 칭찬인 줄은 아니까 쑥스럽기도 하고 그 표현이 낯 간지럽기도 하고 해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아...하...하...쑥스럽다. 어떻게 하지...
이 표현에 대해 궁금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봤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저와 남편에 대해 칭찬하는 관용어구라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이젠 이런 말을 해 주는 시댁가족들이나 남편의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많이 듭니다.
특히,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아버님이 한번씩 이 말을 해 주실 때나,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 말을 해 줄 때는 - 그들은 그 말을 제가 한 어떤 행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그냥 습관적인 표현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 저는 그리스에서 고생했던 시간들에 대해 순간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감사해서 그래, 잘 하자. 이렇게 마음 먹게 되곤 하네요.
역시, 꼭 맞는 칭찬의 말들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내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구나 싶습니다.
여러분도 아내나, 남편에게 혹은 가까운 지인의 배우자나 며느리에게,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상대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이런 그리스식 표현으로 칭찬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이래서 (우리 / 너의) 결혼식에서 그렇게 밥을 많이 먹었다니까.
(당신과 결혼한 게 / 당신이 내 친구와 결혼한 게) 얼마나 기쁘던지!"
한국 결혼식은 피로연에서 춤을 많이 추진 않으니, 이런 표현이 더 정겨울 수도요!
낯간지러운 표현지만, 결혼한 지 30년 된 배우자가 들어도 기쁜 말일 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남편에게는 쑥스러워 이 표현을 해준적이 없는데, 가끔 고마울 때 그리스인들처럼 한번 사용해 봐야겠네요.
여러분 즐거운 목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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