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는 연말 가족, 친척, 지인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날짜가 조금 특별합니다.
어린이에게는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지만, 어른끼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때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고, 12월 31일 밤 12시 새해를 맞으며 주고 받기도 하는데요. 지역별로 조금씩 날짜가 다른데, 아테네를 비롯하여 12월 31일 밤에 선물을 주고 받는 지역이나 가족들이 더 많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문화지만, 글을 쓰기 전에 확인 차 그리스 전국 각지 7개 지역 출신의 35세 이상의 성인 20명에게 물었습니다.)
저희 집안의 경우 원래 12월 31일 밤에 선물을 주고 받곤 했었는데, 제가 처음 이민 왔을 때 이런 문화를 몰라 크리스마스 이브 때 선물을 전달한 후로는 이제 어떤 친척은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때, 어떤 친척은 12월 31일 때 선물을 주곤 합니다.
저는 24일 저녁 파티 때 선물을 이미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31일 저희 집에서 있을 파티에 참석할 새로운 친척에게 줄 선물 몇 개를 더 사러 돌아다녔는데요.
이런 그리스 선물 문화를 반영한 듯, 27일 토요일은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여전히 선물을 사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한국인께서 이곳에 여행 왔을 때, 로도스 시 중심가를 골목 골목 안내해 드렸더니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여긴 명품샾과 카페가 많아서 꼭 서울의 가로수길 같네요."
(제 생각이 아니니, 또 이런 말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흥분하는 독자님이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이날은 가는 곳마다 차가 많이 막혀, 차를 아주 멀리 세워 두고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선물을 받을 친척들의 얼굴과 그들의 취향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옷 가게 앞을 지나다가 좀 이상한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금색 트리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서 그 트리 모양으로 쌓아 올린 디스플레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람과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인들이 아주 사랑하는 물건인 '치즈 채칼(강판)'이었습니다.
파스타 종류와 다양한 치즈를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은 요리 위에 이미 채 썰어 놓은 치즈를 얹어 먹기도 하지만, 덩어리 치즈를 음식을 먹기 직전에 직접 채칼에 갈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덩어리 상태로 치즈를 보관하는 것이 더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자주 먹는 흔한 치즈의 종류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아주 작은 슈퍼가 아니라면, 면 단위의 작은 동네 슈퍼에서도 이 정도 종류의 치즈는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요리는 아래 야채와 갈은 고기, 소스가 들어 있는데 (파스티치오는 아닙니다.)
그 위에 채 썬 치즈를 뿌려 오븐으로 구운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채 썰어 놓은 치즈를 사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에서 요리를 하며 직접 채칼로 갈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치즈 채칼은 그리스인 집에는 필수 품목인 것입니다.
연말 성수기에 선물을 많이 팔아야 하는 옷 가게에서, 이런 치즈 채칼을 구리 빛이 도는 금색으로 칠해 크리스마스 트리 처럼 쌓아 올린 것은, 그리스인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그리스와 해외에 100개 이상의 매장을 둔 30년 전통의 브랜드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서서 웃고 난 후에, 그 옆 진열장을 보고 저는 또 한번 웃음을 터트렸는데요.
이번엔 치즈 채칼이 특수 조명처럼 전구 위에 씌워져, 마네킹을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치즈 채칼 조명, 정말 탐나는 걸요?^^"
그리스인들의 유머 덕에, 이날 다리 품을 많이 팔아 고단했던 선물 사기는 즐겁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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