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느 화창했던 날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시내 여기 저기 일을 보러 돌아다니는데도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아~~날씨는 좋고 겨울 마지막 세일을 하는 옷 가게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오전 업무를 마치고 평소처럼 집에 들러 빛의 속도로 요리를 해 식구들과 직원에게 점심을 먹이고 딸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준 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사무실에서 한숨 돌리며 다시 앉았습니다.
워낙 그리스에선 잠깐 문 닫은 가게나 회사들도 있는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어서,(그리스에서는 메시메리라고 불리는 이 시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 드렸었지요?) 다들 각자의 책상에 앉아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요.
글쎄 맘 착한 스타브로스 군이 맛난 커피를 사다 주겠다는 거지 뭐에요!
아~좋다! 딱 좋다!
사무실에서도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지만 최근에 새로 생긴 근처 카페에서 아주 맛있는 커피를 인근 상점이나 회사들을 대상으로 착한 가격에 팔고 있었기에, "오오~~나도 커피 부탁할게~" 라고 말을 했고, 부지런한 스타브로스는 머릿수대로 주문에 맞춰 커피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게 사온 커피가 평소 마시던 것과 달리 더블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커피였고 게다가 향이 첨가된 것이라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저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다행히 커피를 사온 스타브로스는 저를 등지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제 표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 사다 줬는데 본의 아니게 인상을 쓰는 것을 봤다면 정말 미안했을 텐데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늘 심심할 때면 뭐 장난칠 것이 없나 찾는 그리스인 남편 동수 씨!
그만 제 표정을 봐 버린 것입니다…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좋을 것을 기어이 한 마디 말을 건넸는데요.
"왜? 커피가 맛이 없어? 스타브로스가 이상한 커피를 사다 준거야?
스타브로! 너 커피 다시 사와야겠는데?!!!"
이 대사만 들으면 저를 꽤나 위하는 눈치 없는 남편 같아 보이지만, 동수 씨를 조금만 겪어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가 저를 위해 한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심심하면 남 놀리고 장난치길 좋아하는 동수 씨는 때마침 심심하던 차에 막역한 사이인 스타브로스를 놀리고 싶었기에 저런 말을 급하게 뱉은 것입니다.
저는 정말 유치해서 봐 줄 수가 없다 싶어, 커피가 맘에 안 들었지만 "아냐. 괜찮아. 그냥 마실래." 라며 딱 잘라 말을 하고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발동이 일단 걸렸는데 거기서 그만 둘 동수 씨가 아니었습니다.
"어? 왜? 커피가 맘에 안 들잖아! 아!! 이거 봐!! 올리브나무!!
커피컵 담아 왔던 종이에 설탕이 엄청 들어 있네~~~
스타브로스는 네가 설탕 안 넣어서 먹는다는 것을 몰랐나봐!"
다행히 스타브로스는 코웃음을 팽 한번 치더니 매니저 씨의 장난을 전혀 받아 주지 않고 자기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는데요.
장난으로 몸을 풀어야 하는데 풀 수 없었던 매니저 씨!
급기야 장난의 대상을 저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브나무! 나랑 농구 한 게임 할 거야? 자자~! 커피 맛이 이상해서 설탕 필요하지?
자 받아 봐! 설탕! 어서!"
라며,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 1회용 설탕들을 던지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 인간이 미쳤나? 싶어 고개를 휙 드는데, 아이쿠…설탕은 그만 제가 목에 칭칭 감고 있던 머플러에 고이 안착해 주었고, 그걸 본 동수 씨, "아하하하하하하하하~~~머플러가 농구 골대처럼 되었네!" 신나게 웃더니, 또 다른 설탕들을 손에 들고 마치 본인이 마이클 조던이라도 되는 냥 폼을 잡으며 연속으로 설탕을 던져 제 머플러에 안착시켰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뜨헉! 모두 골인하다니!!!
차례로 머플러에 안착된 설탕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저도 그만 기가 막혀 "하하하..." 웃어 버렸고, 신이 난 동수 씨는 혼자 두 팔을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승리의 골 세리머니를 하더니,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색을 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후로 그냥 일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그 설탕을 그냥 머플러에 품은 채 학원에 애를 데리러 갈 뻔 했는데, 다행히 설탕들이 후두둑 떨어져 줘서 잘 놔두고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가끔 저런 당치도 않는 장난을 칠 때면 스톱 버튼이라도 누르고 싶을 만큼 어이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동수 씨 덕에 웃을 일이 많은 것 만은 사실이구나 싶네요.
이런 유쾌한 동수 씨와 저는 지난 발렌타인데이, 어쩐 일로 아주 대판 싸웠고 그 싸움 덕에 저는 주말 동안 포스팅도 할 수가 없었는데요.
그 싸움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얘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말씀 드릴게요.^^
여러분, 유쾌한 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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