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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편견과 정체성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8. 9.

 

 

글이 다음 뷰 인에 오르자 어김없이 편견의 잣대를 갖고 계신 분들이 제 블로그의 글들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편견이 심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 저는 참 속이 상합니다.

세상 사람 종류는 다양한데 그냥 무시하고 살지 왜 속이 상하기까지 하냐고요?

이유는 저 역시도 과거 어느 시점에는 그렇게 편견덩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인생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였고...

그리스에 이민오기 전에, 외국인 남편을 만나기도 전에, 젊은 나이에 이미 돈으로 겪을 수 있는 갖은 고생의 종류들을 겪어보았고, 그걸 딛고 일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혼자 잠 못 자며 일해 보기도 했었고, 좀 먹고 살만하니 인간관계를 통해 닥친 가슴 찢어지는 사건들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보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 바탕 휘몰아 치고 나서 좀 한숨 돌리고 살만하여 그 동안 고생하느라 애썼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을 때쯤, 그리스인 남편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고, 서른 다섯 넘어 이르지 않은 나이에 그리스로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군 것이 그래도 꽤 괜찮은 것들이었는데, 이제 좀 살만한데 저는 그리스에 와야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그리스 경기가 나빠지면서 남편이 그리스로 먼저 들어와 부모님을 도와야 했기에 저 역시 들어올 수 밖에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고 싶은 이유와 가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 제 안에 또한 있었기에 수 많은 날을 기도로 지새우고 눈물을 쏟았던 날들을 끝내고야 이민을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각오를 하고 왔지요.

그런데 그런 대단한 각오들의 10배는 더 힘든 게 그리스에서 아시안으로, 홀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세상을 모를 때 이민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저의 사고가 저를 더 힘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그래도 좀 대접받는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이런 고생들을 하게 되어서 더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힘들었건, 지금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적응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인생에서 고생이 크면 클 수록 제가 갖고 있던 편견은 하나씩 줄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딱 단정지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되겠지요.

그래서 단정적인 사고, 편견의 잣대를 기득권인양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며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죽을 때 까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늦은 나이에 깨달아서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제, 오늘.

제게 한국말을 적은 기간 못했다고 오버한다느니, 국제 결혼 자랑하지 말라느니 댓글을 남기신 분들,

(저는 국제 결혼을 단 한번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런 말을 듣다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리스에 한번도 와 본적 없으면서, 그리스 1인당 GDP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그리스를 전기도 안 들어오는 나라 취급하신 분들,

또한 저 같은 국제 결혼한 블로거 주제에 다음 뷰 메인에 올라서 기분 언짢은 티 팍팍 내셨던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세상에 당신이 아는 것, 겪은 것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없는 곳에 살면서, 한국과 많이 다른 먼 곳에 살면서

제 정체성에 이렇게 혼란이 왔구나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리스를 좋아하는 저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만큼,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왜 해외블로거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다음 메인에 자주 등장하는지 답을 알려드릴까요?

다음 뷰 개편 이후로 글 발행 지원 체제가 바뀌면서 많은 좋은 글을 쓰던 블로거들이 다음 뷰를 떠났습니다.

독자로서 좋은 글을 못 읽게 되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해외블로거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체제가 바뀌어서 다음 뷰가 좋아졌든 나빠졌든,  

블로그는 고국과 나를 연결해 주는 가느다란 끈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한국인들한테 자랑질하지 말고, 그리스어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그리스인들에게 글이나 쓰라고 댓글을 남기셨지요.

참 가혹한 댓글인데, 아마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르고 썼겠지요.

 

부디,

제 블로그 시작점부터 귀찮더라도 조금만 글을 더 읽어보시고 댓글 쓰시지 싶습니다.

제가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표현한다고 해서, 제가 행복하다고 자랑질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인생이 어렵고 사건투성이라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각설하고..

그렇다고 제가 블로그를 그만 두거나 글 발행을 멈추진 않을 테니 애독자님들께서는 안심하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인 작년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일을 하다 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이제는 이 날보다는 덜 답답한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