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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로도스

짧은 일탈, 특별한 밤 외출에 마음이 시원해졌어요.(그리고 미안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6. 12.

한국에 살 때도 답답할 때는 가끔 마음 맞는 친구와 삼청동 골목이나 올림픽 공원 서쪽 능선, 파주출판단지 안쪽

처럼 한가한 길을 걷고, 맛있는 커피 마시는 게 제가 일탈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업무에 쫓기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복잡하게 갈라졌던 마음이, 한가한 풍경 속에서 가닥이 모아져 생각이

정리되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리스에 와서는 이렇게 한가한 일탈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적응이 되니 해야할 일이 늘어나서 낮엔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밤엔 가족 돌보고

손님 맞이 하느라 정신 없는 시간들이었지요. 

시부모님이 바로 뒷집에 사시기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저희 가족끼리만 맛있는 것을 먹고 들어올

때도 어떨 땐 좀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게 쉽던 밤 외출도 자주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딸아이를 몸이 아파도 봐주시던 

친정부모님도 여기엔 없으니 매니저 씨와 둘이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아진 것입니다.

친구, 남편, 딸아이...누구와 밤 외출을 해도 자꾸 시계를 볼 수 밖에 없어졌습니다.

 

오늘은 매니저 씨가 집에 늦게 들어와 밥을 간단히 챙겨주고 딸아이 숙제도 봐주고 대략의 일과가 끝난 후, 

머리가 아플만큼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잠깐 동네라도 걷다 들어와야겠다 싶었습니다.

매니저 씨가 좀 사다달란 것도 있고 해서

저는 정말 오랜만에 늦은 밤 혼자 외출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빨리아뽈리 밖에 차를 세우고, 밤이지만 관광객이 북적이는 고성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시가지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의 건물에 은행이 있습니다.

 

 

로도스는 가죽 제품이 싼 터키 지역과 가깝고, 가죽 생산을 직접 하기도 해서

이런 가죽 수공예 제품을 파는 가게가 많습니다.

 

 

 

 

그러다 커피 생각에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습니다.

 

 

커피와 작은 블루베리 파이를 하나 들고 다시 걸었습니다.

 

 

 

 

 

예쁜 조명가게도 있습니다.

 

걷고 또 걷고...

 

 

한적한 식당과 카페들이 보입니다.

천연해면스펀지 파는 가게를 지나

 

닥터피쉬 체험하는 곳을 지나며 시계를 보니, 

이제 집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젊은 관광객들이 악기를 연주해 여행경비를 벌고 있네요.

연주를 잠깐 듣는데 좋습니다.

 

늦은 밤, 관광객을 그려주는 거리 화가들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빈센트 반 고흐도

'밤의 까페테리아'를 그렸던 프랑스 남부 지중해 근처에 살 때,

목적은 다르지만 이들처럼 밤에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잠깐 생각해 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신시가지로 들어옵니다.

 

집앞에 도착하니 이웃집에 앉아 있는 낯선 고양이가 저를 반겨 주네요.

가로등 아래, 예쁘기도 하지요.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바쁘다고 미뤄두었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심각한 이야기들을

매니저 씨와 늦도록 한참을 나누었습니다.

바빠서 말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쌓인 감정들

서로 오해했던 것, 서운했던 것, 속상했던 것...

그런 것들이 짧은 일탈의 정리된 생각 속에서 나온 말들이 되어

차분한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미안하다고 오해였다고 서로 얘기하고나니

무거운 돌덩이가 빠져나가듯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역시 가끔 내 상황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그래야 문제를 묵혀 두거나 피하지 않고 풀어갈 수 있구나 싶습니다.  

 

여러분 오늘 마음 시원한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