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신기하게 나와 같은 만화를 보고 자란
그리스인 가족들
그리스에 와서 제가 정말 깜짝 놀랐던 일 중 하나를 이야기하려 하는데요.
어느 날, 친척 끼끼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 매니저 씨와 시누이, 끼끼, 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세 살, 다섯 살 씩 터울이 나는 이 세 사람은 어릴 때 삼 남매처럼 자랐는데, 당시 '중세 성곽 마을인 빨리아 뽈리' 안에 집이 있던 매니저 씨 남매와 친척 끼끼는 그 안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고 했고, 그것이 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기존에 제가 알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 로도스의 중세 성곽 마을 빨리아뽈리 입구>
이 곳에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관광객에게 10살 때부터 성곽 마을 안내를 해주며 영어를 배우고 수고비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매니저 씨 이야기나, 성곽 내에 헐리웃 영화를 찍으러 온 촬영 팀 낙타를 구경하다가 낙타가 시누이 얼굴을 핥아서 울고 불고 했던 이야기 등, 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들어왔던 것입니다.
"넌 어릴 때 뭐했니?" 라고 묻는 질문에 "학교 갔었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삼팔선 놀이하고 학원 다녔어." 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었던 것이지요. (혹시 아파트 주차장에서 하던 삼팔선 놀이를 아는 분 계신가요? 주차 라인에 수비가 서고 수비를 피해 주차 공간을 뛰어 넘어 끝까지 가는 게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이 세 사람은 TV도 잘 안 보고 성곽의 고즈넉함에 젖어 지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날 끼끼가 놀러 와서 매니저 씨와 시누이와 함께 회상하며 폭소했던 어린 시절 추억은,
뜻밖에도 그들이 어릴 때 봤던 TV만화에 대한 이야기었습니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끼끼와 시누이, 그리고 매니저 씨까지(성격이 워낙 다혈질이라 누구랑 싸우고 분해서 울 때도 있지만), 어릴 때 한 만화를 보고 엄청나게 대성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이 세 명을(그들 표현을 빌어 못난이 삼형제처럼) 대성통곡하게 만든 만화가 뭐였는지 아세요?
바로 캔디캔디였습니다!
혹시라도 캔디캔디를 모르는 세대들을 위해서 캔디 캔디를 잠깐 소개하자면요^^
캔디 캔디[ candy candy ]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은 고아 소녀 캔디의 인생 역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영화로, 1976년 일본교육텔레비와 도에이동화가 제작하였다. 미즈키 교코가 각본을 썼으며, 일본 순정만화의 대표적인 작가인 이가라시 유미코가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작품으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생동감 있는 인생의 굴곡이 펼쳐진다. 한국에서는 1977년 9월부터 1980년 1월 21일까지 《캔디》라는 제목으로 MBC에서 방영되었고 1983년 4월부터 1985년 5월 27일까지《들장미 소녀 캔디》란 제목으로 일요일 아침 8시 MBC에서 재방영되었다. 캔디는 미국 미시간호(湖) 남쪽 작은 산간 마을에 있는 고아원 '포니의 집'에 살고 있다. 단짝 친구 애니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입양되어 떠나가지만, 캔디는 양녀가 아닌 라건 집안 남매의 말동무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심술쟁이 남매인 닐과 이라이저 및 라건 부인에게 온갖 구박과 모함을 받지만 잘 이겨낸다. 출처- 두산백과 |
저 역시 어릴 때, 한국에서 매일 일요일 아침을 기다리며 열혈 시청 했던 바로 그 캔디캔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바로 그 캔디캔디!
TV 만화가 아쉬워서 나중에 만화방에서 만화책으로 또 빌려 보고, 친구들끼리 돌려봤던 바로 그 캔디캔디!
안소니, 테리우스, 앨버트, 스테아, 아치 중 누가 제일 멋있냐고 어린 여자 친구들끼리 서로의 이상형 취향을 논하게 했던
바로 그 캔디캔디!
이제 보니 백허그의 원조는 테리우스?? ^^
그 캔디캔디를 보고, 안소니가 죽는 장면에서 이 세 사람은 TV 앞에 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던 것입니다.
한국과 이렇게 먼 그리스에서도 어릴 때 나와 같은 만화를 봤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보고 셋이 대성통곡하는 장면을 상상만해도 너무 웃겨서 저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남자인 매니저 씨에게 도대체 그때 왜 울었었냐고 물어보자, 여동생과 친척인 끼끼가 둘이 펑펑 울기 시작하자 자기도 어쩔 줄 몰라서 울었다고 변명을 했습니다만, 평소 감성 충만한 매니저 씨라면 게다가 어릴 때라면, 내용을 보고 울고도 남았을 것 같습니다. ^^;
<친구 결혼식에서 매니저 씨와 시누이 - 평소 으르렁대지만, 때론 이렇게 다정한 남매>
그들이 어릴 때 봤던 만화 중 저와 똑같이 본 만화는 이 뿐 아니었습니다.
스머프와 요술공주 밍키도 있었습니다.
<랄랄라 랄랄라 랄라랄랄라~저는 편리 스머프를 좋아했어요^^><꿈과 희망의 요술공주 밍키 밍키~우주로 날아가 버린 요술나라 꿈나라>
현재 그리스TV에서도 한국에서 딸아이가 보던 만화 중 똑 같은 어린이 만화를 방송해 주는 것이 있는데
더빙만 그리스어로 되어 있고 한국에서와 똑 같은 만화를 보게 된 딸아이는 완전히 신나 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번 자세하게 포스팅할게요~^^)
아무튼 캔디캔디 덕분에 매니저 씨와 저는 부쩍 친근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서로 어디에 있는 나라에 사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역 만리 먼 곳이지만 같은 만화를 보며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같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 준 셈입니다.
그리스에 이사 오기 전,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때 동창에게 캔디캔디 컬러본 만화책 세트를 선물로 주고 왔었는데
캔디캔디를 같이 읽을 만한 딸들을 키우고 있는 이런 나이에도, 그런 선물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친구가,
그리고 그 친구와 같이 만화책을 돌려보며 감성 돋는 손 편지를 주고받던 우리의 찬란했던 십대가,
참 그리운 날입니다.
여러분도 어린 시절 추억 돋는 만화 하나쯤 갖고 계시지요?
오늘 가까이 있는 친구나 배우자에게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이야기, 한번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추억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함께 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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