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어떻게 이렇게 길이 캄캄할 수가 있지. 분명 대로였는데...
엉엉..어떻게 해…"
이민 첫 해 여름, 어느 숲길에서 제가 내 뱉은 비명입니다.
대개 그리스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 중 운전에 자신이 있거나 길눈이 밝은 분들은 차를 렌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경우라도 길눈이 밝은 분들은 배가 그리스 섬의 항구에 한 나절 정박하는 동안 되도록 많은 곳을 돌아보려고 이곳 저곳 가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길눈이 밝고 그리스의 대부분의 렌터카에 GPS가 장착되어 있다고는 해도, 그리스에서는 정확한 정보 없이 초행길에 아무 곳이나 짐작으로 길을 찾아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1. 그리스 지형은 의외로 산이 많고, 유적 보호를 위해 길이 좁고 구불거리며 일방로가 많습니다.
이는 도시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저도 아테네와 로도스 시를 다니며 도무지 왜 여기로 나가면 내가 예상한 거기가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스는 길이 직진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이 많아, 한국의 서울이나 다른 도시들처럼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방향만으로 예상했던 큰 길과 만날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로도스 시 곳곳의 사진들입니다.
수 많은 유적지와 지형 때문에
길이 전혀 반듯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google image
저희 집은 시의 반대편 끝이라 이 지도에 잡히질 않는군요^^
특히 로도스 시는 모양이 뾰족하기 때문에, 한국에 살 때 길눈 하나는 끝내준다고 자신했던 저였지만 제대로 된 길의 방향을 찾기 위해 같은 자리를 돌고 또 돌고 또 돌며 익히며 1년이 지나고서야 대략의 길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로도스 시의 마법의 사거리 라고 제가 명명한 곳에 갈 때면, 순간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하지? 라고 고민하게 될 정도인데요.
제가 마법의 사거리 라고 명명한 곳을 대략 그려보면 이런 모양인데요.
그것이 사거리에 섰을 때는 아주 정방향 사거리로 보이는 곳인데 실제 도로에 들어서면 모든 도로가 휘어져 있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대부분의 시들은 이런 식의 도로가 많기에, 택시를 타더라도 미리 목적지로 가는 지도를 확인하고 탔을 때 바가지 요금을 쓰지 않게 됩니다. 길이 워낙 복잡하고 좁으니 이런 확인 절차가 없이 택시를 탈 경우 택시기사가 이상한 길로 돌아가도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작년쯤 저도 시내에서 급한 일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택시 기사는 제가 관광객인 줄 알고 10분 거리를 이동하는데 전혀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했고, 또 바가지 요금까지 씌우려고 했었는데요. 제가 그리스어로 "왜 이길로 가냐? 왜 그 돈을 받으려고 하냐?" 말을 하자, 택시기사는 깜짝 놀라며 원래의 빠른 길로 들어섰고 요금도 미터기에 찍힌 대로 받았습니다.
2. 그리스의 섬들은 지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그리스는 6,000개의 섬이 있는 나라인데, 그 중 유명 섬들에 크루즈 배가 정박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잘 알려진 섬들은 미코노스나 산토리니 같은 섬인데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그리스의 작은 섬
산토리니와 미코노스
이 섬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륙의 지형과 전혀 다른 지형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도스 섬의 경우엔 섬 전체 크기가 서울 면적의 3배 크기로 제주도와 비슷한 정도인데요.
그나마 로도스 시 내외의 길과 지형은 위험한 정도는 아닌데, 산이 있는 내륙지대나 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형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꼭대기의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로도스 시이고,
섬 가운데로 갈 수록 산악지대가 나옵니다.
제가 숲에서 길을 잃었던 것도, 원래 숲으로 들어가려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왕복 6차선의 큰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저희 집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려다가 뒤에서 오는 어떤 차가 위험하게 추월을 하는 바람에 한 신호 전에서 좌회전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불과 50m 전에서 좌회전을 한 것이니 길이 나오겠지 싶었고 어쩔 수 없이 그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완전 캄캄한 숲길이어서 밤엔 가로등도 잘 들어오지 않은 내륙지대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한국의 강원도의 어느 산속 길과 같아서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어떻게 이런 도로가 있는지 놀랄 수 밖에 없었고, 당시 섬 지형을 정확히 몰랐기에 어디로 나가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전화를 하려는데, 이런! 신호가 터지질 않았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가려는데 너무 캄캄해 그 조차 쉽지 않았고, 저는 그만 두려운 마음에 차를 세워 놓고 엉엉 울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나가게 해주시면 정말 뭐든 잘 할 게요. 엉엉"
간절히 기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한참 울다 길을 겨우 찾아 나왔는데, 전혀 다른 섬 반대편으로 나오게 되어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지형이 만들어져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스의 섬들 중엔 이렇게 특이한 지형을 갖고 있는 장소가 많기 때문에 함부로 모르는 길을 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도스 섬 남부 지역에서도 길을 잃고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에 (그곳은 인적이 드물고 터키와 가까워 군부대가 많아 잘못 진입하면 탱크도로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는 이 섬의 도시 밖을 돌아 다니는 것을 아주 조심하고 있습니다.
로도스 섬 최 남단의 프라소니시(Prasonisi)라는 장소인데(시에서 2시간 거리),
서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어 여름엔 좋지만
겨울엔 높은 강수량으로 길이 없어져 버리는 곳이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제주도 같은 섬은 평평한 지형에 가운데가 한라산으로 뾰족하게 올라온 경우라 산악지역 운전만 조심하면 크게 길을 잃을 일이 없는 곳이라 여행으로 갔을 때에도 편하게 GPS를 따라 운전했을 때가 많았는데요.
그리스의 섬들의 지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모르는 지역은 지도로 확인하고 위험지역인지 확인한 후에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운전 실력과 길눈을 믿고 혼자 렌터카로 로도스 섬의 남부 지역으로 이동했던 한국인 남성 관광객도 있었는데요.
결국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다 비행기를 놓치는 상황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3. 그리스의 렌터카 회사 중엔 간혹 나쁜 그리스인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어요.
그리스를 여행하며 자동차나 사륜 오토바이 등을 빌려 잘 모르는 곳으로 운전을 할 때, 이런 그리스의 독특한 지형들 때문에 차나 오토바이에 흠집이나 고장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악덕 그리스인들이 운영하는 렌터카 회사에 잘못 걸리게 될 경우, 원래 내가 지불해야 하는 수리비의 몇 배의 가격을 바가지를 씌우고 그것을 내지 않겠다고 할 경우 무력을 가하거나 경찰에 허위 신고를 해 구금시키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인 중에도 이런 피해를 입은 관광객들도 있었는데요.
아테네에 있는 주 그리스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이런 악덕 렌트카 회사들의 이용을 자제해 줄 것으로 공지하며 상습적인 업체명을 공개해 두었으니, 여행 전에 꼭 대사관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여행하면 좋을 듯 합니다. (주 그리스 대한민국 대사관 인터넷 주소 : http://grc.mofa.go.kr/ )
본격적인 그리스 관광철이 다가오며, 요즘 부쩍 그리스 여행에 관한 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이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해 글을 썼는데요.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거나 꿈꾸고 계신 분들도 꼭 기억해 두시면 좋을 듯 하네요.
요즘의 로도스에는 노천 카페마다 관광객들이 제법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슬슬 차도 막히기 시작하고요^^;;
여러분, 오늘도 완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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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수 씨는 요즘 저를 꼬꼬올리베 라고 부른답니다.
그리스인 남편에겐 너무 어려운 한국인 아내의 블로그 닉네임인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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