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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그리스 여행

아테네 공항 직원에게 큰 오해 받았던 우리 엄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3. 7.

 

 

 

엄마는 늘 지나치게 절약하는 분이셨습니다.

한국 전쟁을 어린 시절에 겪은 그 세대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중학교부터는 스스로 돈을 벌지 않으면 다닐 수 없어, 일하며 공부하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서울에 처음 신접살림을 차렸을 때 얼마나 단칸 방이 작았고, 얼마나 세간이 없었는지, 그래서 자식들을 키우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노력해야 했는지 그런 얘기들은 저절로 외워질 만큼 수 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깎고 또 깎고, 심지어 아픈 제 손을 잡고 약국에 약을 지으러 갔었는데 그 약값을 깎으려고 했던 엄마가, 어린 마음에 참 너무 한 것 아닌가 이상해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제게 선명하게 기억나는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저희 세 딸이 부모님과 한 방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 어느 날, 새로 개발된 동네에 저희 방을 하나 줄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내일이 이사하는 날이라며 장롱 안 두꺼운 겨울 솜이불 속에 감춰둔 내일 치를 아파트 잔금을 꺼내 그 돈을 세보고 또 세보며 얼굴 가득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입니다.

저도 자식을 키워보니 엄마의 그 기쁨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고, 그 기쁨의 순간을 위해 엄마가 얼마나 아끼고 수고를 하셨을지, 또 그 이후에도 저희 셋을 공부시킨다고 얼마나 더 많이 노력을 하셨을지, 돌아보면 늘 엄했던 엄마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덮을 만큼 큰 감사한 마음으로 뭉클해지곤 합니다.

 

이런 저희 엄마가 십 수년 전 아버지의 여러 차례의 큰 수술과 어려운 고비를 함께 다 넘기고 나시니, 이제는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자 싶으셨는지 그간 못 해본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대단히 아끼며 낭비 없이 사신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여윳돈이 생기면 세계 이곳 저곳을 여행 다니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여권에는 세계 각 곳의 도장이 찍히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 지구상에 안 밟아본 곳이 별로 없으실 만큼 여행을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절약이 몸에 벤 엄마이다 보니, 여행을 가셔도 싸게 갈 수 있는 여행상품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다 정말 싼 상품이 나오면 그걸로 여행을 떠나시는 경우가 많으신데요.

한 두 사람이 단출하게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와 달리, 붙임성 좋으신 저희 엄마는 저렴한 관광상품이 나오면 전혀 모르는 분들의 단체 관광 틈새에 친구분과 둘이 들어가 다녀오시기도 하는 등 사교성과 절약의 끝을 보여주시기도 해서 저희 딸들을 깜짝 놀라게 하실 때도 많았습니다.

당연히 여행 짐을 꾸리는 데에도 선수가 되셨습니다.

항공사의 기준 무게에 맞춰 최대한 많이, 안전하게 여행가방 싸기, 뭐 이런 대회가 있다면 단연코 저희 엄마를 내보내고 싶을 만큼, 그 작은 체구로(저희 엄마는 저와 다니면 제가 딸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담한 체구를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꽁꽁 싸는지 신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여행가방 꾸리기의 신공을 갖고 계신 엄마가, 제가 그리스로 이사올 때 부칠 짐을 제외한 제가 직접 들고 들어올 짐들을 어떻게 함께 꾸려 주셨는지 아마 안 봐도 짐작될 것 같습니다.

딸과 손녀가 낯선 땅으로 이사하는 것을 어떻게든 함께 하고 싶으셨기에 그리스로 들어오는 비행기에 동행하셨고, 이렇게 우리 세 사람과 함께 했던 이민가방들 안엔 냄비며 그릇까지 별 희한한 물건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저, 딸아이 세 사람은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직항이 없는 그리스에 오느라 중간에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었고, 아테네에서도 로도스로 들어오기 위해 또 한번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엄마는 잦은 여행 경력으로 이렇게 판단하셨다고 합니다.

 

'긴 비행에 피곤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편한 옷과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해.

로도스 공항엔 매니저와 부모님이 마중 나올 수도 있으니까

옷을 갈아 입고 치장하는 것은 아테네 공항에서 하는 게 좋겠다~'

화장

 

그렇게 아테네에서 입국 심사를 하고 입국장을 빠져 나가려고 마지막 관문인 세관 직원들이 서 있는 출구 앞을 지나려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세관 직원이 엄마를 하고 잡는 게 아니겠어요???

 

"이 봐요! 레이디! 가방이 왜 이렇게 큰 거에요? 이거 규정 무게가 맞는 건가요? 뭐

가 들었는지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요!"

 

라며 엄마가 끌고 있던 이민가방을 굳이 다시 검색대에 올려 기계에 통과시켜 보는 거였습니다!!!

 

그리스의 세관 직원들 google image.gr

 

 

 

당황한 엄마와 저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검색대에 가방을 통과시켜 본 공항 직원이 말에 정말 깜짝 놀라 주저 앉을 뻔 했습니다.

 

"레이디! 혹시 당신 장사하러 그리스에 입국한 것입니까? 어디서 온 사람이에요?

여권을 보여 주십시오!

불법으로 물건을 들여 장사하면 안 됩니다!!"

슈퍼맨

 

 

헉

 

너무 당황한 저는 부랴부랴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런 게 아니고 그리스로 이사하는 중인데 부치지 못 한 짐들을 들고 들어온 것뿐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는데요.

 

"이 검색대 사진을 보세요. 가방 안에 냄비도 들어 있고, 그릇도 있고!

이거 팔려고 들어온 거 아니냐고요!

게다가 당신 여권에 왜 이렇게 입 출국 도장이 많아요?

전 세계로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 아니에요??"

평화

 

 

그렇게 말하며 엄마를 아래 위로 막 훑어 보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의 옷차림이 최대한 장거리 여행에 편안한 스타일의 온통 검은색이었고, 머리도 비행기에서 주무시느라 정돈되지 않고 파마가 엉켜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아닌 하필 엄마를 붙잡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체구가 작은 엄마가 들고 있는 이민가방은 덩치가 큰 제가 들고 있는 이민가방과 같은 무게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뭘 대단하게 팔러온 사람의 보따리처럼 작은 엄마 옆에서 거대하게 커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엉엉

 

괜한 오해를 받고 무척 당황해서 잘 하시는 영어도 변변히 못 하며 입을 벌린 채, 곤봉 찬 덩치 큰 세관 직원을 보고 서 계시는 엄마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리지도 않은 나이든 딸 때문에 이 무슨 고생이신가 싶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직원에게 엄마의 가방을 열어 보이며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한 번 보시겠어요? 냄비 두어 개와 접시가 섞여있긴 한데, 이게 다 쓰던 물건이에요.

한번 보세요. 제가 십 년 가까이 쓴 물건들인데 워낙 아끼는 것들이라 여기에 이사오며 들고 온 거랍니다.

누가 이런 쓰던 물건을 팔겠어요? 한번 자세히 보세요."

멍2

 

그 직원은 제가 보여주는 가방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흠..그러고 보니 쓰던 물건이 맞네요. 냄비가 정말 깨끗해서 새 것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헉4

그러고 보니 짐을 쌀 땐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오래된 냄비가 정말 새 것처럼 광이 났습니다.

 

 

이렇게 겨우겨우 세관 직원을 통과해 나오며 오해 받은 게 못 내 억울 해 옷 갈아 입고 화장부터 해야겠다며 투덜거리시는 엄마에게, 저는 물었습니다.

 

"엄마, 냄비가 어떻게 저렇게 새 것처럼 광이 나지요? 그러니 더 오해를 했나 봐.

괜히 저것까지 들고 온다고 했나 싶네요... "

안습

 

그런데 엄마는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어휴, 얘. 아니야. 정말 냄비 잘 들고 온 거야.

저게 오래 썼지만 좋은 거라 새로 사려면 또 돈인데 안 그러니?

그리고 사실은 내가 저 냄비들을 광택제로 엄청나게 닦았거든.

하하하 그랬더니 저렇게 오해를 하고들 있네? 얘. 팔 아프게 닦은 보람이 있다.

저게 먼저 부친 짐 안에 들어 있는 것들까지 개수가 많아서

밤새 팔 떨어지는 줄 알고 닦았다니까. 호호."

오키

 

멀리 타국으로, 어리지 않은 나이에 이사하는 딸에게 뭐라고 더 해주고 싶어서, 그 냄비를 밤새 팔 아프게 닦은 엄마였습니다.

저는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묵직한 것이 속에서 올라오려는 것을 꾹 누르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에서의 이민생활의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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