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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그리스 여행

딸이 그리스와 한국의 관광객이 되고 싶은 이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4. 28.

 

 

 

 

"엄마, 잠이 안 와…나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마리아나가 제게 이렇게 말하고 뽀뽀를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벌써 오늘 저녁만 네 번째 있는 일입니다.

녀석이 이렇게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는 내일이 바로 학교를 다시 가는 날이기 때문인데요.

성격이 예민해서 인지 매번 연휴나 방학 끝에는 2~3일 전부터 잔뜩 긴장을 하고 몸살이 나기도 해서 제가 다독이고 괜찮다고 말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2주간의 명절 방학이 끝이 나려니 잔뜩 긴장을 했는지 토요일이었던 어제는 열이 39도까지 오르며 툭하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연휴 2주 동안, 저도 남편딸아이에게 "공부하지 말고 밖에서 뛰어 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 아이들과 십대들

 공교육 강화로 매일 학교 숙제가 많고 예체능 학원을 여러 곳 다니는 그리스 아이들 역시, 학기 중엔 맘껏 뛰어 놀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손을 놓은 아이들은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름의 십대를 즐기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거나,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자격증을 획득하도록 지원하는 학교(2년~7년제)에 대학 대신 입학하지만,

공부를 하기로 맘 먹은 아이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 비율이 전체 고등학생 중에 적음에도 불구하고 4년 전액 무료로 국립대학(전국 19개)을 다닐 수 있으니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외로 대학 경쟁률도 높고 재수생도 많습니다.

꿋꿋한올리브나무

 

 

 

그래서 딸아이는 2주 연휴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보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만들기를 원 없이 하며 명절 연휴를 신나게 보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명절 준비로 바쁘게 쇼핑을 하거나 사무실 일로 외근을 해야 했던 저를 쫓아다니며, 오랜만에 함께 시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맛있는 것을 제게 얻어 먹었습니다.

 

 

 

작년 수영복이 완전 작아져서, 생일 때 할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돈으로 수영복도 하나 샀습니다.

 

 

"엄마! 오늘 시내에 가면 그 O&O옷 가게 옆에 있는 파이 집에서

버섯파이 하나 사주면 안 될까요???"

 

 

"엄마! 내일 시내에 가면 보석 파는 가게 옆의 오믈렛샌드위치 하나 사주면 안 될까요??"

 

"엄마! 나, 오늘은 좀 멀리 있는 어린이 놀이터 있는 카페에 가서 놀고 싶은데,

잠깐만 들를 수 없을까요??"

 

결국 오전 업무 후에 점심시간에 딸아이가 가자던 카페에 갔었습니다.

 

"엄마! 우리 나비 계곡도 가고, 해변에 수영하는 관광객 있던데

바다에 수영하러 가면 안 될까요??"

 

뭐...딸아이가 원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들어 주었습니다. 파이나 샌드위치2유로(3,000원)면 사는 것들이니, 그 동안 학교 매점 샌드위치와 파이, 혹은 제가 싸 주는 것만 매일 먹던 딸아이가 별미를 먹으며 기뻐하는 크기에 비하면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시내에도 키즈카페가 많은데, 딸아이가 가자던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카페는 보통 딸아이가 바쁜 주중에 일부러는 좀 가기 어렵게 1시간 넘는 거리에 떨어진 곳이라, 연휴이니 특별히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날씨가 요 며칠 흐려서 나비 계곡(시에서 좀 멀어요.)이나 수영하러 데려가진 못 했지만, 대신 차로 올라갈 수 있는 다른 산에도 잠시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 날씨가 이렇게 흐린데도 수영을 하는 관광객들

 

그런데 말입니다.

딸아이는 그 때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엄마! 내가 꼭 관광객이 된 것 같아서 저어어어엉말 좋아요!"

"뭐? 관광객이 뭐가 좋은데? 어디에 뭘 싸게 파는지도 모를 수 있는데?"

"음...관광객들은 여기에 놀러 온 거잖아요. 매일 수영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맛 있는 것도 먹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학교도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또 엄마는 일 해야 해서 바쁘고..."

 

저는 마리아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마리아나! 이제 한 달 반 만 지내면 여름방학이야. 금새 또 관광객처럼 지낼 수 있다고. 곧 더워져서 해변에서 잠시라도 수영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날씨가 온다니까. 그때가 되면 네가 원하지 않아도 관광객처럼 지낼 텐데 뭐…"

"그래도. 엄마. 그거랑 관광객은 또 달라요. 난 여기 이사오기 전에 엄마랑 그리스에 여행 왔을 때가 자꾸 생각이 나요. 매일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으니, 예쁘게 차려 입고 여기 저기 구경하러 다녔던 거요. 진짜 행복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매일 체육해야 하니 운동화에 편한 옷 차림인데..."

"그랬구나... 그 때랑 뭐가 다를까? 응. 그래. 매일 예쁘게 원피스차림으로 차려 입고 나오지는 못 한 다는 거?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거?"

 

제가 이렇게 말을 하자, 갑자기 딸아이는 또 생각난 듯 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월요일에 학교에서 영어 시험도 있고, 그리스어 시험도 있고, 학원에서도 영어 시험이 있는데 난 어떻게 하지...엉엉.."

저는 아이를 달래며 "스트레스 받지마. 그럴 필요 없어. 학교 시험은 지금부터 같이 공부하자. 엄마가 도와줄게. 그리고 학원 시험 스트레스 받으면 학원 하루 가지마. 네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시생도 아닌데 그렇게 몸이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할 필요 없어. 엄마가 학원 선생님한테 전화할게."

아이는 그제서야 눈물을 좀 멈추고 학교 영어시험 범위에 있던 것을 다시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딸아이는 똑같이 해변에서 쉬고 똑같이 밖에서 파이를 사 먹어도, 관광객들은 쉬러 온 것이니 해야 할 일이 없이 여유로워 보였던 것이 못 내 부러웠던 것입니다.

 

 

작년 여름, 제가 찍어서 올렸던 사진 기억하시지요?

참 여유로워 보이는 관광객들입니다.

 

그리스매년 평균 1,770만 명의 관광객이 여행을 오는데, 이는 그리스 등록 인구보다 많은 수입니다.  이 중 1,270만 명이 인근 유럽에서 오는 관광객으로 총 관광객의 92.8% 입니다. 이 중 독일인 관광객은 230만 명에 달합니다. 2014년 그리스 방문 예상 관광객 수는 1,850만 명입니다.

그리스 전국에는 스튜디오나 작은 숙박시설을 제외한 "별이 1개 이상 있은 호텔'만 집계했을 때 9,111개의 호텔이 있습니다.

<출처- en.wikipedia.org>

로도스 역시 9개월 동안 매일 최대 10만 명의 관광객 다녀가는 곳이라, 여름 동안은 관광객으로 가는 곳 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복잡해, 관광객이 거의 없는 나머지 3개월과 거주 인구가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출처- www.greekisland.co.uk>  <www.visitrhodes.gr> 

 

 

저는 딸아이를 이렇게 달랬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 쉬는 여름이 가장 바쁘잖니.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고모도 모두 여름엔 정신 없이 일을 하는 거 몰라? 그나마 너와 엄마는 해변에 나갈 시간이라도 있지만, 아빠는 작년 여름 7개월 동안 딱 두 번 해변에 나갔었어. 해변이 코 앞인데 말이야. 너도 이제 그리스에 이만큼 살았으니, 아무리 수 많은 관광객이 부러워 보여도 여름이면 더 수고하는 그리스인들을 보면서 관광객들을 너무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대신, 우린 또 다른 곳에 여행 갈 때도 있잖니. 그리고 우린 날씨 좋은 곳에 살잖아. 난, 네가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만 봤으면 좋겠어. 가끔 한국 관광객 지나갈 때마다, 한국음식 먹으러 한국 가고 싶다고 좀 그만 얘기하고. "

 

며칠 전에도 시내에서 한국 관광객 아주머님들이 저희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 한국말이 들리자 돌아본 딸아이는

"어머! 엄마! 한국 사람들이야! 나, 한국 사람, 작년 여름에 보고 9개월 만에 처음 봤는데요! 나랑 말이라도 한 마디 하고 가시지 그냥 막 가 버리셨네요. 내가 한국사람처럼 안 보이나 봐요.

근데 우동이랑 양념갈비랑 곰탕이랑 너무 먹고 싶다! 한국 사람들하고도 많이 말하고 싶다~~한국 놀이공원에도 가고 싶다~ 아~~ 한국에 가고 싶다~ 나는 한국 관광객이고 되고 싶다~~~~"

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리스 관광객은 공부도 일도 안 하고 쉬는 것 같아 보여서 되고 싶지만, 한국 관광객은 더 많은 이유에서 되고 싶은 마리아나입니다.

딸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우동이랑, 양념갈비랑, 곰탕이랑, 김치랑,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맘 만 먹으면 드실 수 있는 한국에 계신 여러분.

언제나 한국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러분.  

(저는 토요일에 한 달쯤 만에 한국의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말은 글보다 즉흥적이니 자꾸 단어가 빨리 입에서 안 튀어나와서 한참을 머뭇거려야 했습니다…친구하고라도 대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울분을 터트리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세월호에 대해 말로는 처음 대화를 한 것이었거든요. 정말 여기서는 누구하고도 내 나라의 사고에 대해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국 사람끼리는 나라 흉을 보더라도 또 그 후엔 내 나라이니 보듬어야지 어떻게 하겠냐 로 끝날 수 있는 대화인데 말이지요.)

일상을 살아야 하니 한국에 놀러 온 관광객 같이 살 순 없겠지만,

여러분은 제 딸 마리아나가 그렇게도 여행가고 싶어하는 곳에 살고 계십니다.

파이팅 하는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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