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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이민호 덕에 혼자 한글을 깨친 그리스 아주머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19.

 

한달 반 만에 디미트라 양과 한국어 수업을 재개했습니다.

그리스는 새 학년이 시작되며, 디미트라 양 직장인 대형서점은 참고서와 새 학년 준비물을 준비하는 손님들로 꽉 차 야근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수업 후에 마음이 막 시원해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디미트라 양의 집에 들어서니 그녀 어머니 이로Ηρώ 아주머님께서 저와 딸아이를 반겨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딸아이가 보고 싶다고 굳이 같이 오라고 하셨던 이로 아주머님이십니다.)

언제나처럼 제 기호에 맞는 따뜻한 커피가 내려져 있었고, 쿠키와 초콜릿이 가지런히 놓인 접시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려고 막 식탁에 자리잡고 앉는데, 아주머님은 급히 작은 흰 종이와 연필을 들고 오시더니 제 앞에 뭔가를 쓰시기 시작했는데요.

무슨 일인가 싶어 아주머님을 관찰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쓰고 계셨습니다.

헉이.민.호. ????

 

서툴지만 분명 이민호 라고 쓰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머! 디미트라에게 배우신 거에요??"

"아니야. 내가 혼자 배웠어!"

"혼자요? 혼자 어떻게요?"

"그냥, 연습했어!"

그러시며 다른 한글도 쓰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자랑하셨습니다.

물론 혼자 깨친 한글이라 획을 쓰는 순서 같은 세밀한 부분은 좀 가르쳐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지만, 다년간 한국 드라마를 봐오시며, 이민호의 엄청난 팬이셔서 냉장고 안쪽에 이민호 사진을 붙여 놓으시는 이로 아주머님께서(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얼굴을 보니 애틋해서 좋으시다며), 급기야 혼자 한글을 써보기를 시도하고, 결국 쓸 줄 알게 되셨다니, 저는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난 후, 한참 동안 요즘 이민호가 나오는 드라마 상속자들에 관한 이야기, 윤은혜가 시작한 드라마 이야기, 런닝맨, 무한도전 이야기로 이로 아주머님과 디미트라 양과 저는 삼십 분도 넘게 깔깔 거리며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요.

 

 

 

디미트라 : "무한도전 가요제 준비하는 것 봤어요? 선생님? 난 너무 많이 웃어서 배가 많이 아팠어요!

런닝맨에서 광수가 여자 옷 입은 것 봤어요? 눈물 나게 웃었어요!"

이로 아주머님 : "올리브나무~~~ 이민호 정말 멋지지?? 그 드라마는 다 멋져~ 이민호 형도 멋지더라!

드라마 노래도 좋고! 난 수요일만 기다리고 있어~~~~!!!"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디미트라양입니다.

 

 

한국에 살 때는 그냥 아무하고나 쉽게 나눌 수 있어서 도리어 자주 이야기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 이런 한국 드라마, 예능, 연예인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한국인이 전혀 없는 곳에서 그리스인들과 이런 이야길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제 속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기분 같았습니다. 비록 그리스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나눈 이야기지만 마치 한국의 친구들과 작정하고 앉아서 긴 수다를 떤 것만 같다 할까요?

 

 

사실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은 어제 김치를 담아서 오늘 딸아이와 비빔밥에 김치를 먹고 난 후부터였는지도요.

아니, 그리스에서는 겨울에만 나오는 무와 배추를 사면서부터였는지도요.

어쩌면, 숙주나물이 먹고 싶어도 팔지 않은 그리스에서, 아시안 식재료 칸의 캔에 담긴 것은 찝찝해서 안 사 먹었었는데 새로운 브랜드의 숙주 캔이 마트에 들어왔길래 사서 뜨겁게 다시 삶아서 양념해 무쳐 먹었던 그때부터였는지도요.

happy-birthday오늘 내 생일도 아닌데 이렇게 기쁜일 연속이어도 되는 거야?? 오키

 

집에 돌아와 저는 디미트라 양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디미트라를 만나서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좋은 밤 보내요.~~~♥♥"

 

그러자 그녀에게 금새 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도요. 쌤~~~~~ 오늘 너무 많이 행복해요~~~♡♡♡"

뿌잉3

 

저에게 참 큰 선물 같은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참, 다음 주엔 수업 끝나고 시간을 따로 내, 이로 아주머님에게 한글 획 쓰는 순서를 제대로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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