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남편의 문신을 처음 인식한 딸아이의 반응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문신(타투)이 한국에 비해서는 보편적인 문화라, 작은 문신 하나 정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출이 많은 여름에 그리스를 찾는 인근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을 보면 참 다양한 문신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하는데요.
제 친구 디미트라 양만 하더라도 보편적인 직업을 갖고 있고 제법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몸 전체에 7개의 작은 문신들을 갖고 있습니다. 독일인인 또 다른 친구는 다리에 발찌 모양의 문신을 갖고 있는데, 그녀는 그냥 일반 회사원이고 성격도 조용한 편입니다.
또한 제 그리스인 시댁 친척들 중에도 크고 작은 문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유럽에서의 문신이란 특별히 예술적인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 특히 작은 문신을 새기고 있는 사람을 길에서 본다고 해도 특별해 보일 것이 전혀 없는 것 입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일수록 문신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귀를 뚫지 않은 사람이 귀 뚫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처럼(워낙 많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문신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신을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와 비슷한 느낌인 것입니다.
저와 딸아이도 이제는 몇 년 살다 보니, 이런 그리스와 유럽인들의 다양한 문신에 대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사람을 볼 때 문신에만 시선을 고정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리스에 여행 와 민 소매를 입고 있던 동수 씨 팔의 문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 당시만 해도 유럽의 이런 타투 문화를 몰랐었고, 한국에도 지금보다는 문신을 하는 사람이 현저히 적을 때였기 때문에 이런 문신에 상당히 놀라 애써 침착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해야 했었습니다.
동수 씨 오른 팔엔 열쇠 모양의 문신이 있는데, 마치 열쇠가 사슬에 걸려 있는 듯 한 모양의 문신으로 제법 정교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동수 씨가 자신의 문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해주며 이런 나름의 철학을 어필했었습니다.
"난 내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물론 100년 넘은 금고나 2차대전 때 독일 탱크회사에서 만들고 남겨두었던 오래된 금고 같은 것을 고치게 되었을 때의 만족도는 대단하고 포르셰 같은 자동차의 이모빌라이저를 프로그램 하게 될 때도 그런 차를 뜯어서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하지만...
그보다도 열쇠라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가 특별하다고 봐. 사람들이 차를 사고 팔 때, 집을 사고 팔 때 결국 열쇠를 넘겨 주고 받게 되잖아. 이렇듯 열쇠라는 게 어떤 것의 '시작'이 되고 '마무리'가 되는 경우가 많아. 난 그래서 열쇠가 매력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타투까지 새기게 된 거야."
저는 그저 그렇구나...싶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동수 씨가 한국에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그리스에 오기 전이니 딸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였는데, 지금도 궁금증이 많아 질문을 자주 하는 마리아나는 더 어릴 땐 정말 엉뚱한 행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 여름 마리아나는 민 소매를 입은 동수 씨의 팔에 문신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열쇠 모양의 문신을 처음 인식한 마리아나의 표정은 가관이었는데요.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동수 씨 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팔의 문신을 한번 보고, 동수 씨 얼굴을 한 번 보고,
문신을 한번 보고, 동수 씨 얼굴을 한번 보고…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만약 딸아이가 "이게 뭐야?" 이렇게 물어보면 "응. 그건 문신이라는 거야." 라고 설명을 해주려고 마음으로 대답을 준비하며 딸아이가 질문을 해 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딸아이가 그 어떤 질문도 없이 혹은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해버린 행동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저와 동수 씨는 뒤집어져라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아 글쎄, 딸아이는 말없이…
마치 E.T처럼 검지 손가락을 천천히 내밀더니...
자신의 작은 검지 손가락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침을 묻혀서,
동수 씨 팔의 문신에 대고 쓱쓱 문질러서 지우려고 애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팔에 그린 신기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몸에 그런 걸 그리게 되면 나중에 씻을 때 꼭 지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아이가 싸인펜으로 자신의 팔에 팔찌 같은 걸 삐뚤삐뚤 그려 넣은 적이 있었는데,
제가 저녁에 씻기며 "어휴 왜 이렇게 안 지워지게 그려놨냐!" 고 잔소리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렸던 딸아이는 손가락에 침을 흥건하게 아무리 많이 묻혀서 문질러도 그 동수씨의 문신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게 당황했고 "엄마한테 혼나! 이거 혼나! 얼른 지워야 하는데..." 라고 말을 해서, 저희를 더 깔깔거리고 웃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녀석이 많이 커서 더 이상 동수 씨의 문신을 봐도 아무 감흥이 없으며, 자신은 아픈 게 싫어서 커서 문신은 안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알 것 많이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동수 씨와 저는 어렸던 마리아나의 당시 행동을 회상하며 매번 웃곤 한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참 빨리 자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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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에서 타투샵을 하시는 그리스인과 결혼하신 한국인 독자분이 계셨는데, 요즘은 소식이 뜸하셔서 정말 궁금하네요. 가게 이름이라도 알면 이런 글에 홍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말이지용.~
* 제 글을 매일 기다려주시고, 때론 댓글로(요새 답은 못 하고 있지만 하나 하나 읽으며 얼마나 감사한지요...) 때론 묵묵한 응원으로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