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나를 웃긴 그리스 친구의 증명사진
원래도 디미트라는 유쾌한 아가씨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까지 즐겁게 만들 만큼, 늘 에너지가 넘치고 잘 웃는 재미있는 친구이지요.
또 마리아나와는 얼마나 잘 놀아주는지 (아니 '함께 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하네요!) 딸아이는 디미트라를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그녀와 또 다른 친구인 갈리오삐는(그녀의 이름이 갈리 '오빠'로 들린다는 독자님을 위해 그녀의 애칭을 알려드릴게요. 그리스에서는 이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약칭으로 '뽀삐'라고 부른답니다. 처음엔 두루마리 화장지가 연상되어서 이 이름의 약칭을 들었을 때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젠 제 지인 중에 여러 명의 '뽀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익숙해졌고 귀여운 약칭이란 생각을 한답니다.^^) 요즘 10월에 아테네에서 있을 한국어 능력시험 TOPIK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몇 주 전엔 지난 회 차 기출 문제로 모의 시험을 보았는데, 그 후로 시험 걱정에 몹시 심각해진 두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이 친구들이 시험 응시원서를 작성하면서 정말 저를 빵 터지게 했던 일이 있었는데요.
갑자기 응시 날짜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둘러 응시원서를 작성하고 응시료를 지불하는 등 바빴던 두 사람이, 저에게 보여준 응시원서에 붙인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뽀삐 양은 그냥 일반 증명사진을 무난하게 붙여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유쾌한 디미트라 양이 붙인 사진은...
증명사진은 분명 증명사진인데, 눈이! 눈이 빨간색인 거였어요!!!
이 사진도 이렇게 얼굴만 크게 반쪽으로 나온 이유가, 나비계곡에서 저와 셀카를 찍고 싶었던 디미트라였는데,
휴대폰 카메라가 줌 4배로 되어 있어서 그만 이렇게 사진이 나왔고,
분명 둘이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을 확인하니 이렇게 나와서 함께 신나게 웃었답니다.
그런데...증명사진은!!!
뙇! 빨간색 눈!!!
'이, 이걸! 시험응시원서에 쓰겠다고!!!???'
아니! 왜! 일반사진에서 실수로 눈에 빛이 반사되어 빨갛게 찍은 것도 아니고, 하필 증명사진을 눈이 빨갛게 나오도록 찍었을까...정말 이상했는데요.
응시원서에 붙어 있는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놀라고 웃겼지만, 혹시라도 이 친구가 민망해 할까 봐 크게 웃지도 못 하고 저는 웃음을 삼키며 물어야 했습니다.
"음. 크헉. 음...(웃음을 참느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저기 디미트라! 왜 눈이 빨간색이에요?
보통 증명사진엔 이런 모습으로 찍긴 어려울 텐데...
그리고 사진관에서 일부러 이렇게 찍어주던가요???"
정말 궁금한 마음에 물어본 제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에 저는 결국 참았던 웃음을 빵 터트리고야 말았답니다.
"아웅. 그게요. 이 사진은 다른 때에 필요해서 찍어 둔 것이었는데,
그냥 평범한 증명사진은 너무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좀 재미있게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뽀삐에게 부탁해서
이렇게 찍어달라고 한 거에요.
헤헷! 뽀삐가 사진작가라 이렇게 증명사진이 나오게 알아서 찍어주더라고요.
참참! 그리고 쌤. 자세히 보면요~ 이 날 화장도 일부러 좀 과하게 했어요.
그래서 좀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저는 정말 좋아요!!!"
역시...좀비를 좋아하는 특이한 디미트라 양입니다.ㅎㅎㅎ
저는 한참을 한 바탕 웃고 "그래도 시험응시원서에 이런 사진을 쓰면 아무래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사진을 바꾸면 어떨까요? " 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고, 디미트라 양은 또 평소 그녀답게 쿨하고 흔쾌히 "그럼 바꿀게요. 다른 평범한 증명사진도 있어요!" 라고 말하고 다른 사진으로 얼른 바꾸어 붙였답니다.^^
나중에 그 증명 사진을 동수 씨에게 보여주니 역시 디미트라 양만큼이나 웃긴 것을 좋아하는 동수 씨 답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 이 사진 정말 마음에 드는데! 아니 왜 응시원서에 안 붙인 거야!
그냥 붙어도 손색이 없겠구만!!"
ㅋㅋ 내 그럴 줄 알았어요.
주말에 동수 씨가 2박3일 동안 다른 지역 은행 금고 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동수 씨가 없으니 집에 정적이 감돌더라고요.^^) 저는 금요일 토요일도 평소보다 몇 시간 더 많은 근무를 해야 했었고, 짬짬이 책 작업을 하면서도 밤엔 마리아나와 또 다른 호텔 투어를 다녀오는 바람에 피곤해서 정신 줄 놓고 지냈던 요 며칠이었는데요.
한번 씩 디미트라 양의 증명사진을 보며 그녀 특유의 너스레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답니다.^^
"민수 씨! 이것 좋죠?" 라며, 시험의 듣기평가에 나오는 여성 성우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서 수업 중에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디미트라 양. (토픽 시험에서는 예문의 남자 이름으로 민수 씨가 자주 등장한답니다^^)
독특하고 유쾌한 당신 때문에 오늘도 크게 웃어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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