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그리스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그리스인들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13. 08:02

 

사람에게 가장 향기롭게 들리는 단어는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주어야 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 내 이름을 실수로 다르게 불렀을 때 상대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는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상대방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기'를 하는 부분에서, 저는 그리스로 여행와 그리스인들을 알게 되고도 한참 동안 그리스어로 이름을 부르는 이들의 문화를 몰라 많은 것을 놓쳤었습니다.

 

우선 이전엔 영어식 발음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리스인들의 이름을 부를 때 많이 곤혹스럽게 느꼈었습니다.

영어의 R발음이나 L 에 해당하는 발음들이 영어와 아주 달랐기 때문었습니다.

그리스어의 Ρρ는 한국어로 '으로'순간적으로 한 호흡(음절)에 발음하는 것 같은 발음입니다. Λλ람다우리나라의 ㄹ 과 비슷한 발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매니저 씨의 본명을 불렀을 때에도 영어의 R에 해당하는 발음인 'Ρρ로'가 이름에 있다보니, 한동안 그냥 영어 식으로 R 처럼 발음했었고, 그땐 몰랐지만 이에 대해 두고두고 '친구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슬퍼2너 미국에서 온 것도 아닌데 내 이름을 왜 계속 그렇게 발음하는 거야!! 라는 식의 타박을

받아야 했지요. 하지만 그 땐 그리스에 살 때도 아니어서 도저히 '로' 발음이 안 되었어요!!

 

 

하지만 그리스어를 배우며 알게 된 진짜 충격적인 일은, 이 'Ρρ로' 발음을 극복한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여자 이름을 부를 때나 여성형의 호칭을 (그리스어는 명사에 남성 여성이 정해져 있는데요. 예를 들어 사랑Αγάπη, 고양이Γάτα 등은 여성형 명사입니다.) 부를 때는 단어의 변화가 없는데, 남자 이름을 부를 때나 남성형 호칭을 부를 때는 단어의 끝(어미)이 확실히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어에서도 상대의 이름을 부를 때, 받침이 있는 이름 뒤에는 –아,를 붙이고(예: 우빈아! 수현아! 지섭아!) 받침이 없는 이름 뒤에는 –야, 를 붙여서(예: 송이야! 미주야! 개리야!) 불러야 하지만, 그리스어에서는 아예 단어 끝(어미)을 바꿔 불러야 하는 것이라, 그 이름이 아예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남자 이름 중에 'ος오스'로 끝나는 이름이나, 남성형 명사 중 'ος오스'로 끝나는 명사부를 경우엔 이 부분을 'ε에'로 바꾸어 부르는 법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 이름이 스테르기오스,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부른다면, 스테르기에! 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Χρόνια πολλά Στέργε! 흐로냐 뽈라 스테르기에!

"축하해, 스테르기오스야!"

 

남성 친구, 라는 필로스 Φίλος 라는 단어는 남성형 명사인데, 만약 한국어로 친구야! 라고 부른다면 필로스! 가 아닌 필레! Φίλε 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Καλέ μου Φίλε 갈레 무 필레 : 나의 좋은 친구야!"

 

영어인 Oh, My God! 과 같은 뜻의 감탄사로 쓰이는 그리스어는, God에 해당되는 단어인 Θεός쎄오스를 사용하지만, 신을 부르는 형태이므로 'Αχ, Θεός μου 아흐, 쎄오스 무가 아닌 'Αχ, Θεέ μου  아흐, 쎄에 무! 로 쓰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이 감탄사를 자주 사용합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삼촌을 부를 때도 삼촌이란 θείος 씨오스 라는 단어가 Θείε 씨에! (삼촌!) 로 변형되고, 형을 부를 때도(보통은 그냥 이름을 부르지만요.) 형이라는 αδερφός 아델포스 라는 단어가 αδερφέ 아델페! (형!)변형됩니다.   

 

그리스 축구팀 파나디나이코스의 선수 마브리아스가 부상당한 동료에게 보낸 메세지가 기사화 되었는데요.

"αδερφέ 아델페! (형제여!)" 

 

 

얼마 전, 저에게 그리스인 친구에게 쓴 한국어 편지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해오신 독자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그 친구와의 감정적 오해를 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저는 편지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보내드렸는데, 그 그리스인 친구분 이름 역시 ος오스 로 끝나는 남자 이름이었습니다.

그분은 한국어로 쓴 편지에 '마리오(스)야!' 라고 쓰셨는데, 저는 그리스어로 '마리에!' 라고 번역을 하며, 그분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 눈 앞에서 그 그리스인 친구를 '마리에!' 라고 부른다면, 아마 좋아할 거라고요. 왜냐하면 마리오스란 분이 외국에 나와 사는 동안, 이제껏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외국인 친구들은 그에게 모두 마리오(스)! 라고 불렀을 테고, 그리스식으로 마리에! 라고 부르진 않았을 테니까요.

 

ΧΡΟΝΙΑ ΠΟΛΛΑ ΜΑΡΙΕ 흐로냐 뽈라 마리에!

축하해, 마리오스야!

 

마찬가지로 남성형 명사의 대부분은 ς스로 끝이 나는데, 그 명사들을 부를 때도 ς스를 떼고 불러야 해서, 그리스어로 아버지 라는 단어인 Πατέρας 빠떼라스 를 부를 때 Πατέρα 빠떼라! 라고, 할아버지라는 단어인 Μπαπους 바뿌스를 부를 땐 Μπαπου 바뿌! 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Ο πατέρα μου 오 빠떼라스 무 / 나의 아버지)

이렇게 그냥 나의 아버지 라는 단어를 쓸 때는 빠떼라스 라고 아버지라는 단어를 그대로 쓸 수 있지만

 

(πατέρα μου 빠떼라 무 /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를 부를 때는 원래 아버지란 단어에서 '스'를 떼고 빠떼라!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그리스인들입니다.

 

 

또한 남성 이름 중에 긴 이름을 짧게 줄인 이름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Αντώνιος 안토니오스 -> Αντώνης 안토니스  Γέωργιος 예오르기오스 -> ΓΙώργος 요르고스, Στέργιος 스테르기오스 -> Στέργος 스테르고스 라고 줄여서 부르는데요.

이렇게 원래 이름은 Γέωργιε 예오르기에! Στέργιε 스테르기에! 라고 불려야 하지만, 줄인 이름은 그냥 ς스 만 떼고 Ιώργο 요르고!,  Στέργο 스테르고!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원래 'ος오스' 가 들어간 이름을 부를 때,

  Γέωργιος 예오르기오스 -> Γέωργιε 예오르기에!

  Στέργιος 스테르기오스 -> Στέργιε 스테르기에!

  이를 줄인 이름들은 부를 때,

  Ιώργος 요르고스 -> Ιώργο 요르고! 

  Στέργος 스테르고스 -> Στέργο 스테르고!

 

 

또한 야니스 Γιάννης 처럼 원래 ος오스로 끝나지 않는 남자 이름은 그냥 ς스 만 떼고 Γιάννη 야니! 라고 부르면 됩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상당히 복잡해 보입니다.

하지만 또 익숙해지면 한국인들이 이름 뒤에 붙이는 를 헷갈리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답니다.

혹 주변에 그리스인 친구가 있다면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 이름을 본토에서 사용하듯' 불러주면 어떨까요?

분명 많이 감격할 것 같습니다.  

 

제가 간혹 강아지 막스나 고양이 아스프로를 보통은 "막스!" "아스프로!" 라고 부르다가도 한번씩 다정하게 "막스야!" 라든가 "아스프로야!" 라고, 일부러 한국식으로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인들도 고향의 정취를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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