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속의 한국

한국 좌석버스에서 뒷문에 몸이 끼었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16.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오니, 익숙할 줄 알았던 제 머릿속의 한국과 제 몸이 반응하는 한국이 완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

고 있습니다.

머릿속의 한국은 그간 한국의 뉴스나 매체, 친구들이나 블로그 독자님들을 통해 들은 내용들로 아주 익숙하고 유익한

정보로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실제 제 몸이 느끼는 한국은 그간 타지 생활로 익숙하지 않은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

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요.

유럽형 운전에 길들여진 제 몸은 한국에서 오랜만에 운전을 하며 "헉! 유럽과 이렇게 다르다니!" 라고 느끼면서 깜짝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내일 '한국의 운전문화 이것만 바뀌면 완벽하다' 에서 자세히 포스팅 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운전한 기간이나 주행거리가 유럽에서 운전한 그것에 비해 몇 배는 더 될 텐데도, 제 몸은 이미 유럽형

운전문화에 맞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당연히 나라마다 다른 교통법규가 아닌, 운전관행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은행업무, 식당주문, 물건 구매 모든 부분에서 제 몸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해서 깜짝 놀랄 일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어제 좌석버스에서 있었던 웃픈(웃기고도 슬픈)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제 저와 딸아이는 잠실로 향하는 좌석버스를 탔습니다.

저희 부모님 댁에서 잠실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거리인데요.

어제는 잠실 L 캐슬에 지하에 있는 K문고에서 딸아이와 오래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주차시간을 고려해 대중교통을 이용

하기로 한 것입니다.

비가 몹시 왔지만 오랜만에 버스교통카드를 새로 구매하고 충전까지, 바뀐 기계에 금새 적응해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금새 적응하는군!음하하하하!' 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좌석버스에서 사건이 터지고 만 것입

니다.

안 그래도 아직 시차 적응이 완전히 되지 않았고, 연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 피곤한 터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쾌적한 에어컨의 좌석버스는 잠이 솔솔 오기 딱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 살짝 졸았을까요?

안내 방송이 다음 정류장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장소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저와 딸아이는 급히 일어나 버스의 뒷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리스에서 버스를 탈 때 동전이나 모양이 다른 형태의 티켓을 사용했었던 저는, 의식적으로 한국에서는 내릴 때 교통

카드를 기계에 대고 삑-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서, 교통카드 두 개를 꺼내며 서두르다가 가방 안의 물건

몇개를 버스 뒷문 계단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부랴부랴 교통카드를 기계에 먼저 확인하고, 계단 맨 아래 칸에 내려서서 가장 중요한 지갑을 줍는데, 하필이면!

그 때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기사 아저씨는 뒷문을 확인도 안 해보고 열어버린 것입니다!

헉

저는 아저씨가 그렇게 확인도 안 하고 문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이지요.

그리스에서 비록 인종차별로 버스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리스는 어떻든 많은 유럽인들이 오는 관광

국가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의 안전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원칙적으로 대처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이 있는지

보지도 않고 급하게 문을 열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의 좌석버스가 많은 좌석의 배치로 뒷문이 일반 버스에 비해 좀 좁은 편이고 대개는 접이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님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뒷문이 넓은 한국의 일반버스                                                           그리스의 일반버스 

  

뒷문이 좁은 한국의 좌석버스

 

 

그러니까 저는 떨어진 지갑을 줍다가 문이 열리면서 안쪽으로 접힌 문틈에 몸이 끼어버린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아저씨 문을 좀 다시 닫았다가 열어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 아저씨는 거의 30초는 지나서야 반응을 했다

는 것입니다. 딸아이는 정말 어쩔 줄을 몰라 "엄마, 어떻게!"라고 말을 했지만 제 힘으로는 열린 문이 꼼짝을 하지 않았습

니다.

그 순간 아프기도 했고 몹시 창피했는데, 더 놀란 사실은 버스 안의 아무도 그런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본인들 할 일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른 척 해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리스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면, 참견 좋아하고 수다스러운 그리스인들은 "어머! 어떻게 하니!" "기사 양반

문 다시 닫아 봐요!" "아프겠네!" 난리가 나서 도와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버스 안에서 누가 중심을 못 잡아 넘어지기라도 했을 때, 그렇게 반응하는 경우를 수 없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단 한마디 말도 눈길도 주지 않고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창밖을 응시하고 음악을 듣고 본인의 할일들

만 하고 있는 버스 내의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너무 놀라고 만 것입니다.

꼭 저를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창피한 마음이 더 앞섰기 때문에 솔직히 관심 가져 주지 않는 게 고맙기 까지 했으니까요.

대학 때 지하철에서 내리려다가 인파에 밀려 못 내리고 지하철 문에 목이 껴서 옆 칸에 목이 함께 낀 남학생과 눈이 마주

쳤을 때 만큼이나 창피했으니 말이지요. 

게다가 내릴 때가 다 되어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 제 실수이니까요.

 

제가 놀라고 속상했던 것은 어쩌다가 정의 문화를 말하던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른 이의 고통에 무심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을까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사고를 가장해 도움을 유도해서 사기를 치는 악랄한 유형의 사기단들이 기승을 부리는 무서운 나라가 되어버린 탓도

있기에 더더욱 남의 일에 섣불리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문화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뉴스를 통해 들었던, 시민들의 도움이 없어 사고 처치가 늦어 더 큰 문제로 이어졌던 한국의 사건

사고등을 떠 올려 봤을 때, 말로만 들었던 그 일들을 직접 경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문에 낀 사람이 제가 아니고 제 딸아이인데 사람들이 똑같이 반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일이 바쁘다고 그렇게 점검 없이 문을 열어버린 버스 기사님이나 누가 소리를 질러도 상관 안하는 시민들

을 보며, 또한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에 묵묵부답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이 세계가 주목하는 대단히 성장한 첨단 기술의 대한민국이 된 만큼, 각자의 삶이 고단하더라도 조금은 더 따뜻한

대한민국으로 달라으면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여러분 몹시 습한데 그래도 기운 내세요! 파이팅!

* 딸아이가 어제 길 가다 신세계 라는 간판을 보았는데, 신발 세 개 만 파는 곳이냐고 묻더라구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