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춥다.
다행이 오늘은 비가 오질 않아 햇볕아래 고양이들이랑 같이 앉아 있었다.
몇 주간의 집에 머물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연말 연시의 대접하는 모임들도 이제 끝났다.
집을 대청소 했다.
지친다.
어떤 땐,
이 거대한 섬이 나를 뱉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처럼 느껴진다.
마치 물고기 뱃속의 제페토 할아버지가 된 것도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외롭지 않았다 거나,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땐.
특별한 이유 없이 외로울 수도, 힘들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지치고 가라앉는 날
퇴근길에 따뜻하고 맵싸한 떡볶기 한 봉지에 김말이 튀김 사다가
TV보면서 늘어져서 먹고나면
해결될 수 있는 낮은 수위의 스트레스가.
오분 거리 친구집에 가족들 다 재워 놓고 찾아가
오붓하게 마주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수다 좀 떨고 나면
알고 보면 별일 아니었구나 털어버렸던 일들이.
이 거대한 섬 안에서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여간다.
이천년이 넘는 고풍스런 유물들, 환상적인 색깔의 바다, 흰빛에 가까운 햇볕, 멋스런 유럽문화
이런 것들 속에서, 쌓인 것들이 소멸되 버렸으면 좋겠건만
소멸되지 않는다.
현재의 나에겐 포장마차 떡복기 한봉지와 구들장보다 못한 것들이다.
부시시하게 안 감은 머리를 질끈 묶고 문열어 주던 친구의 짧은 미소보다 못한 것들이다.
생각이 흘러가고 있을 때,
잠시 안 보였던 딸아이가 베시시 웃으며
어디선가 만들어온 작은 꽃다발을 내민다.
작은 손으로 커피를 한잔 내려준다.
스물스물
쌓인 것들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딸, 고마와.
엄마가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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