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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봄이면 찾아오는 5천 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렸던 추억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8.

봄이면 찾아오는

5천 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렸던 추억

 

 

 

 

 

 

 

 

2004년 3월, 꼭 이 맘 때, 저는 5천 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기분은 몹시 충격적이어서,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그 일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그 즈음 한 기업과의 연계업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저와 동료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 여행이 주어졌는데, 그게 바로 호주였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 스케줄을 살펴보니 골드코스트와 브리즈번, 시드니로 골고루 도는 여행이었고

프로그램도 알차서 시드니에서 오페라를 보고 하버 브리지를 등반하고 골드코스트에서는 리조트에서 제트스키와 요트를

타거나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나름의 자유시간도 주어지는 고급형 여행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그런 고급 여행을 가 본적이 전혀 없었던 저로서는 또한 내 돈 주고 가라면 갈 수 없는 비싼 여행을 보내준다 하니

기회는 이때구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골드코스트를 다녀온 후 시드니에서 등반했던 하버브리지- 선명하게 당시 날짜가 적혀 있는 사진>

 

 

그런데 골드코스트 리조트에서 삼삼 오오 요트를 타고 되지도 않는 외모들로 CF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때,

담당 가이드가 제게 뭔가 서류를 잔뜩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사인을 해야 내일 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을 해 주어야 사인을 할 것 아니냐는 제 말에,

"아, 오시기 전에 프로그램을 못 보셨나요?" 라고 대뜸 묻는 것이었습니다.

"봤는데요? 거기에 뭐 사인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던가요?"

가이드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제게 프로그램을 펼쳐 다시 보여주었고 거기엔 형광팬으로 내일 해야 할 프로그램이

진하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스쿠버다이빙으로 오해했던 그 프로그램!

스카이다이빙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카이다이빙!

스카이? 하늘?

다이빙? 뛰어내리는 것?

뭐야. 그러니까 하늘에서 뛰어내린다는 거야???????

헉

어버버버 거리며 넋이 나가 있는 제게 가이드는 내내 사인해야 하는 서류에 대한 설명을 했고

짐작하셨겠지만 그 서류는 뛸 때 만약의 경우 발생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묻지 않는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아무리 롤러코스터 류의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저이기로서니,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었고,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전 못하겠네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가이드 말이 저의 마음을 바람 앞에 종이 장처럼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 근데 이게 굉장히 비싸거든요. 스카이다이빙 회사 중에서도 아주 큰 회사이고, 한 번 뛰시는데

한화로 60만원 정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고객님께서 뛰어내리시든 안 뛰어내리시든 이 돈은 이미 지불된 상태입니다."

60만원…

지불된 상태…

 

$ $ 안습

돈 천원을 아껴 쓰던 저로서는 아무리 내가 낸 돈이 아니라지만, 이 아까운 돈을 허공에 날릴 수는 없는데 어쩌나

울상이 되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스카이다이빙 연습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뛸 스카이다이빙은 탠덤 스카이다이빙으로 뛸 때 프로 다이버를 등에 매고 함께 뛰는 것이었습니다.

5천 피트에서 뛰어, 3천 피트 전에 펼쳐야 하는 낙하산을 초보들은 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 파트너는 키가 엄청나게 크고 근육질의 금발머리 아저씨가 선정되었고,

(아마 그래야 저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연습을 충분히 한 후, 사인을 하고, 저를 포함한 세 명의 한국인과 세 명의 호주 다이버, 이렇게 여섯 명이 대형 헬리콥터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비슷하게 생긴 헬리콥터였는데 좀 더 큽니다.>

 

그리고 상황을 보아하니, 여성 도전자는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여자 동료들은 아예 호주에 오기 전에 프로그램을 보고 빼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 밥 줄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제가 얼마나 한심하던지요.

 

헬기는 두두두두 굉음을 내며 수직으로 이륙을 했고

저와 함께 탄 두 명의 남자 선배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다이버들은 일대 일로 체인을 걸어 몸을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내려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헬기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5천 피트 상공에는 하얀 안개 같은 구름만 가득할 뿐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교육받은 자세로 헬기 다리에 서서 다이버와 함께 크게 심호흡을 하던 첫 번째 남자 선배는

다이버의 우렁찬 원 투 쓰리 구령에 맞추어 순식간에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구름 때문에 마치 데이빗 카퍼필드 마술을 보는 것처럼, 그들은 뛰어내렸다기보다 그냥 구름 속으로 사삭 하며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모습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선배의 비명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

남은 저희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두 번째로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헬기 다리 위에 섰습니다.

교육받은 대로 두 손은 가슴팍에 모았고, 다이버가 오른쪽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는 절대로 그 팔을 펴서는 안된다는 말만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다이버는 레디? 라고 묻자마자 제 대답은 듣지도 않고 원 투 쓰리! 점프! 라며 제 몸을 달고 뛰어버렸습니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

고글을 착용했지만 눈코입으로 엄청난 양의 습한 바람이 들어왔고,

그 떨어지는 속도는 영화에서 비밀요원들이 느긋하게 떨어지던 그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헐리웃 영화는 다 거짓말이야!!!!! 속으로 깨달을 틈도 없이,

전 속력으로 몸은 땅을 향해 추락했습니다.

바로 펴는 줄 알았던 낙하산은 펼 기세가 없었고

떨어지는 속도는 그냥 계단 세 칸에서 땅으로 뛸 때처럼 중력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투신하는 사람들은 이 기분을 모르니까 투신하는 거야. 이걸 안다면 절대 투신하지 않을 거야.

얼마나 순식간에 떨어지는지 그들은 모르는 거지. 아아..불쌍한 사람들…

기관지가 안 좋은 사람들은 절대 스카이 다이빙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이렇게 많은 양의 바람이 초속으로 코를 침범하는데

견디기 힘들 거야.

OTL

이런 미친 생각들로 지쳐갈 때쯤,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들어 올려지는 기분이 들면서

모든 것이 정지상태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두드리는 다이버의 손길을 느끼면서

그제야 두 눈을 떠보니…

아……그 아래 펼처진 골드코스트 해변과 리조트 집들 아름다운 자연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광경은 어떤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더라도 구경하기 어려운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전망대 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다이버는 엄지를 들어 올렸고, 저도 따라서 엄지를 들어올렸습니다.

다이버가 양손을 방향 선을 움직여 낙하산 방향을 바꾸며 천천히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니고 한 스카이다이빙 회사의 광고 이미지입니다.>

 

그렇구나…이렇게 무서운 걸, 바로 이 맛에 사람들이 뛰는 거구나.

그제야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세상을 구경하고, 배운대로 잔디에 앉듯이 다이버와 착지를 할 때까지도

얼마나 긴장했던지 제 펴진 엄지는 접힐 줄 몰랐습니다.

 

다이빙 회사에서는 저에게 첫 스카이다이빙 수료증을 주었고, 제 뒤에 있던 다이버가 손목에 메고 찍은 비디오를

사라고 권했으나, 그 비디오를 살펴본 저는 도저히 그 추한 모습의 저를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어 비디오를 사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비쌌거든요.^^

<이렇게 생겼어요.-google image>제 것은 한국에서 이사올 때 버렸답니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떠오르는 스카이다이빙의 기억.

아름다웠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일생의 한 번 멋모르고 5천 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렸던 그 기억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딸아이의 딸아이가 태어나도 들려줄 무용담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늘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 한다지요.

늘 겁이 나, 안전한 길을 택하더라도

용감하게 한 번쯤은 안전하지 않는 무언가에 도전해 보는 삶,

그것도 참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주어진 작은 일에 용감하고

그래서 유쾌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랄게요~

좋은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