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기한 그리스 문화

역시 그리스인들! 임산부를 대하는 부담스런 태도!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5. 5. 25.

 

 

 

 

그리스인들은 대개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잘 하는 편입니다. 

한국에 비해 몸에 딱 붙어 몸매가 드러나는 임부복을 선호하는 그리스 문화 덕에 그리스에서 임산부의 배는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나 임신했어요!" 라고 배를 내밀고 다니는 임산부들을 마주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놀랄 정도였습니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임산부라는 것을 아는 순간 상당히 친절을 베풀어서 당황할 때가 많았는데, 일예로 임신 초기 딸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아무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엄마들은 순서가 뒤였던 저부터 상담을 받으라고 앞 순서로 바꿔주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개중엔 평소 친분이 적은 엄마들도 있었고 대부분 직장맘들이어서 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제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순간 상대는 제게 무조건 의자부터 내어주며 자꾸만 앉으라고 하거나 물이나 음료를 가져다주어 당황한 적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대형마트에서 계산을 하다가 약간 잔돈이 부족해서 지갑과 가방을 급하게 뒤지던 중이었는데, 제 뒤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미안한 마음에 산 물건 봉투를 무겁게 든 채 정신없이 잔돈을 찾던 저 대신 바로 뒤의 순서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께서 부족했던 80센트(약 1,000원)를 제 대신 내주며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어휴. 임신도 했는데 어떻게 힘들게 짐들고 돈을 계속 찾겠어요.

내가 내줄테니까 그만 찾고 저기 가서 좀 앉아요."

 

저는 너무 미안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가방에 잔돈이 더 있는데 얼른 찾아서 드릴게요." 라고 다급하게 대답했는데, 아주머니는 "괜찮아요. 큰돈도 아니고... 힘들것 같은데 잠시 앉았다가 얼른 집에 가서 쉬어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물건 계산이 끝나자마자 제 돈은 받지도 않고 사라지셔서,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마운 그리스인들의 임산부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이 임산부를 대하는 태도 중에 상당히 부담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에 전해 내려오는 옛말 때문인데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옛말을 하며 임산부들을 괴롭힐 때가 많습니다.

 

바로 "임산부는 일단 음식 냄새를 맡았다면

그 음식이이 무엇이든 누구것이든 먹어야 한다!

그게 아기에게 좋다!" 라는 태도입니다.

 

물론 세계 어디나 임산부에게 잘 먹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산부마다 입덧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아기의 체질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이나 먹기 싫은 음식이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리스 어르신들은 이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옆집에서 어떤 요리 냄새가 나도 그걸 얻어다 먹어야 한다고 하고, 만약 남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 음식 냄새라고 우연히 임산부가 맡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그걸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음식접시를 들이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 메뉴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든 싫어하는 음식이든 현재 배가 부르든 먹고 싶지 않든 상관 없이 말이지요!!

 

제 경우에 지금은 이런 문화를 알게 되어 적당히 대응하는 요령도 익혔지만, 임신 초기엔 가뜩이나 입덧도 심한데 먹으면 토할 게 뻔한 모든 음식들을 억지로 먹으라고 들이미는 어르신들 덕에 정말 큰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시어머님의 경우 제가 입덧 중에 따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요리해서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뒷집이니 당신이 요리한 음식 냄새가 당연히 날 거라며, 뭐든 요리하는 대로 제게 들고 오시며

 "네 시할머니가 네 시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이웃에서 하는 요리 냄새를 맡았지만 못 먹은 음식이 많았다는데 그 것 때문에 네 시아버지 이마에 점이 생긴거라더라~~"

요리

라는 이상한 이론을 제시하시며 자꾸만 음식을 들이미시며 제가 도저히 속이 안 좋아서 못 먹겠다고 거절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곤 하셔서 저를 많이 당황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렇다보니, 어쩌다 이웃에서 바비큐파티라도 하게 되어 온 동네에 떠들썩한 그리스 음악과 고기 굽는 연기가 진동하는 날은 참 야단법석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시어머님은 제게도 분명히 냄새가 풍겼을 거라고 여기시고 일부러 그 집에 가서 고기를 한 접시 얻어다가 이미 저녁을 다 먹은 저에게 먹으라고 내밀게 되시고, 그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사람 중에 한 두 사람은 꼭 따로 음식을 챙겨서 저에게 또 들고 와서, 그런 날은 갑작스런 여러 사람의 방문에 계속 현관문을 열어주고 접시를 받으며 고맙다고 말해야 하며, 이 많은 고기들을 이미 배부른 상태에 먹을 수 없으니 잘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분주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입덧과 상관없이 둘째 임신 이후로 고기가 거의 몸에 받지 않아서 고생 중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의 부담스런 태도 덕에 저는 평소 몰랐던, 억지로 먹는 고통이 배고픈 고통 이상이란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엉엉

 

며칠 전 이웃 바비큐 파티 때 이웃인 야니스 씨가 가져다 준 고기와 감자튀김

 

 

 

다행히 요즘은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을 핑계 삼아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적당히 거절하는 요령이 생겨서 시어머님께서도 크게 강요는 못 하고 계시지만, 좀 나이가 있는 어르신이 사는 다른 집에 가게 되면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해서 예의상 "정 그러시다면 조금만, 정말 조금만 주세요." 라고 애원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곤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임산부라면 일단 냄새를 맡은 것은 무엇이든 먹어야 아기에게 좋다!' 라는 그리스인들의 태도가 역시 맛있는 먹거리를 좋아해서 집밥에 집착하고 냄새에 유독 민감한 그리스인들다운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너털웃음을 짓게 됩니다.^^

 

 

 

 

관련글

2015/05/14 -  드디어 끝났다!

2014/10/15 -  그리스에서 1년만에 먹은 ‘남이 해준 한식’의 부작용

2014/05/15 -  그리스 사위에게 큰 오해 받은 한국 장모님 친구

2014/02/03 -  많은 설거지를 참 손쉽게 하는 그리스인들

2014/01/15 -  이민 초기 나를 울고 웃긴 그리스 카레

2014/01/10 -  생애 처음 네일아트, 시어머니께 이런 영향을 미치다니!

2013/12/06 -  우리는 한국을 그리워하는 식구다.

 

2013/12/19 -  한국음식 ‘귀걸이’를 요리하라 성화인 그리스인들

2014/01/28 -  별미를 원한다면?그리스음식 예미스타 쉽게 만드는 법

2013/10/29 -  그리스 여성들이 집밥을 사수하는 방법

2013/11/21 -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 어떻게 맛있게 튀기지

2013/10/10 -  그리스인들이 한국인인 나보다 체력이 더 좋은 비결

2013/11/06 -  냄새에 민감해도 너무 민감한 그리스 문화

2013/10/06 - 자다가 그리스인 남편으로부터 당한 어떤 봉변

2013/05/23 - 그리스에서 내가 좀처럼 먹기 힘든 한국음식

2013/03/26 - 생선튀김에 마늘소스를 꼭 먹어야하는 그리스의 비장한 국경일

* 여러분께서 저를 많이 축하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댓글에 일일이 답하진 못 했지만 모든 댓글들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