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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햇볕을 무시했던 동수 씨, 호되게 당했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8. 19.

 

 

 

 

14일이었던 지난 목요일, 연휴 전날이라 사람들이 미어지게 사무실에 들이닥쳤지만 내일부터는 간만의 휴가라 이쯤은 참을 수 있다 했었습니다. 연휴 동안 책 작업도 좀 많이 하고, 외시할머님 사시는 지역의 큰 축제에도 가봐야지 했었습니다.

연휴가 시작되었던 15일 새벽, 아버님과 친구 스테르고스와 함께 바다 낚시를 떠나는 동수 씨의 등뒤에 대고

"물고기 많이 잡아 와! 오랜만에 생선스프 먹을 생각하니까 정말 좋다!~~"

라며 즐겁게 배웅했었습니다.

 

 

*그리스의 생선스프 ψαρόσουπα프사로 수파 는 흰살생선을 손질해서 당근, 호박, 감자 등과 함께 버터와 약간의 밀가루를 풀어 넣고 한참을 끓이다가, 소금과 후추간을 해서 마지막에 레몬을 곁들여 먹는 것인데, 우리나라 생선탕들처럼 맑은 국물은 아니지만 먹고 나면 속이 은근히 풀려서 그리스인들이 겨울에 즐겨 먹는 스프 종류 중 하나입니다.         <꿋꿋한올리브나무>

 

 

 

그런데 오후가 되어서 돌아온 동수 씨 얼굴은 울상이었고, 저는 "왜? 물고기가 잘 안 잡혔어?" 라며 물었는데요.

동수 씨는 제게 등을 돌려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크림을 바르긴 했는데, 오늘 기온이 40도가 넘었었잖아.

게다가 배를 타고 나간 바다 한 가운데는 해가 더 뜨거워서 온도계를 보니 42도 정도 되더라고.

너무 더워 티셔츠를 입고 있을 수가 없어서 벗고 낚시를 했어.

뭐 내가 그리스 햇볕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니고 그냥 괜찮으려니 했는데,

반 나절을 배에 앉아 있었더니 등이랑 팔이 이 모양이 되어 버렸어."

 

그 말을 듣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세상에! 등과 팔이 모두 새빨간 색이었습니다.

 

피부가 두껍고 튼튼한 편인 아버님과 달리, 어머님을 닮아 본래 얇고 몹시 하얀 피부를 가진 동수 씨는 겨울에 보면 핑크색을 띈 피부를 갖고 있는데요.

그리스에 와서 이런 류의 피부를 가진 그리스인들을 살펴보니, 동양인에 비해 피부가 잘 손상되고 점이나 기미도 쉽게 생겨서 백인들의 이런 피부가 결코 좋은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엷은 푸른 눈을 갖고 계신데, 이런 눈 역시 짙은 색의 눈에 비해 햇볕에 무척 취약해서 선글라스 없이는 해가 강한 그리스에서는 운전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이 함께 낚시를 갔지만, 비교적 피부가 튼튼한 다른 두 사람은 반나절 만에 완전 새카맣게 타서 돌아왔고 피부가 희고 얇은 동수 씨는 피부 화상을 입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원래 동수 씨 피부 타입을 알고 있었던 저는 저렇게 좀 따갑다가 나중에 허물 좀 벗겨지고 다시 금새 하얘지고 말겠구나 여겨서 동수 씨의 등과 팔을 알로에 크림으로 마사지 해주며 저녁에 사람들이 파티하러 올 테니 한숨 자라고 한 뒤 조용히 방을 나왔는데요.

 

그런데 저녁이 되어 잠에서 깬 동수 씨의 피부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정말 화상을 제대로 입은 듯 아파서 잘 움직이지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햇볕에 피부가 데였을 때엔 민간요법으로 오이을 붙이거나 생요거트를 바르곤 하는데요.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인 정원 파티에 앉아서도 피부가 아파서 인상을 쓰고 앉아 있는 동수 씨를 보던 어머님은, 냉장고에서 다짜고짜 커다란 통에 들어 있는 생요거트를 꺼내 들고 와서 동수 씨 팔에 철퍼덕 소리가 나게 발랐습니다.

 

"아아아아아악!!!!!!!"

평화

갑작스런 생요거트 폭격에 동수 씨는 정말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따가워! 따가워! 따갑단 말이야!!!!!" 라며 제자리에 일어나서 팔짝팔짝 뛰더니 아니! 그 큰 덩치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분명 아파서 그런 줄은 알겠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파티에 왔던 동수 씨의 죽마고우 친구들은 큰 소리로 웃음들을 터트렸고, 동수 씨는 친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집안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버렸습니다.

안되겠다 싶었던 저와 마리아나는 동수 씨를 따라 들어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동수 씨에게 찬 물을 마시라고 건네며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이번 휴일에 문을 여는 순번인 약국 리스트를 찾아서 급히 약국에 갔고, 증상을 말하니 약사 분은 항균 스프레스와 화상연고 등을 주었습니다.

약사 분 얘기로는, 생요거트가 햇볕에 의한 화기를 빼주는 것은 맞지만 동수 씨처럼 지나치게 화상을 입은 경우 바르면 심하게 따가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돌아와서 약을 건네며 "팔에 바른 요거트를 좀 닦아줄까?" 물었지만 동수 씨는 지금은 건드리는 것도 싫다며 여전히 울상으로 앉아 있었는데요.

하필 그 때, 마당에서 파티를 하던 친구 미할리스는 동수 씨가 괜찮은지 보러 들어와서는 짓궂게도 그런 동수 씨의 이상한 사진을 기념으로 남겨야 한다고 잽싸게 사진을 찍고 도망쳤습니다.

미할리스의 행동에 이제 포기를 한 듯, 동수 씨는 제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너도 사실은 사진 찍고 싶지? 다 알아. 블로그에 찍어서 올리고 싶을 거야. 분명해."

멍2

 

"아니야. 내가 아무리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해도,

아파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일부러 찍을 만큼 막무가내는 아니라고.

그리고 내 블로그 들어오시는 분들은 사진이 없을 땐 글만 써도 다 이해해 주셔."

 

제 말을 들은 동수 씨는 정말 큰 선심이라도 쓰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에이! 크게 인심 썼다. 그냥 찍어.

근데 얼굴은 안 돼. 울어서 눈이 빨갛단 말이야."

 

 

그런 선심 덕에 찍게 된 사진입니다.^^

팔꿈치 아랫부분은 평소 생활 햇볕으로 천천히 타서 갈색인데,

하얀색이었던 팔꿈치 윗부분과 목, 등, 귀, 심지어 머리 속까지 모두 새빨갛게 화상을 입었답니다.

참, 요거트 사이로 동수 씨의 문신이 희미하게 보이지요?

이 문신과 관련된 마리아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해드리도록 할게요.^^

 

 

 

결국 동수 씨는 며칠 동안 밤에도 엎드려서만 잘 수 있었고, 등과 팔 전체에 탱글 탱글한 물집이 한 가득 잡혔다가 터져서 갈색 딱지가 앉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파티 때 손님을 거하게 치른 저는, 윗도리도 혼자 입을 수 없는 동수 씨 병수발을 드느라 연휴 전체를 소모해야 했답니다.

마치 어느 해 겨울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동수 씨 병수발 드느라 연휴의 반 이상을 소모해야 했던 때처럼 말이지요.

 

 

 

오늘 겨우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한 동수 씨는 샤워 후에 마리아나를 부르더니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앉았던 딱지들이 벗겨져서 엉망이 되어 있는 부분을 떼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딸아이가 손이 저보다는 작으니 섬세하게 떼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마리아나는 중차대한 업무라도 수행하듯이 동수 씨 등의 딱지들을 떼어 주기 시작했는데, 동수 씨가 갑자기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이렇게 외치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나! 그건 딱지가 아니라 원래 있던 내 점이라고!

그걸 떼려고 잡아당기면 어떻게 해! 아우! 진짜 아프다!!!!

나 정말 이제 그리스 햇볕 무시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여름 한낮엔 절대 바다 낚시 안 갈 거야!!!"

평화

 

ㅋㅋㅋ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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