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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여성의 과반수를 축하해주어야 하는 국경일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8. 17.

 

 

 

 

한국에서는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 모처럼 며칠 연이은 휴일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도 8월 15일은 국경일로, 이 날은 그리스 여성의 반 이상이 축하나 선물을 받고 파티를 여는 대대적인 날입니다. 도대체 어떤 국경일이길래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축하를 받게 되는 걸까요?

 

이 날은 그리스의 국교나 다름없는 그리스 정교에서 지정한 성모승천일로(카톨릭과 같은 날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종교적인 의미로 휴일 국경일로 지정하긴 했지만 실제로 이날 그리스에서 파티를 하며 여성들이 축하를 받는 이유는 이 날이 '마리아'와 관련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이름 날'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글을 쓴 대로 그리스에서는 생일 이상으로 중요한 날이 바로 이름 날인데요.

(관련글 2013/11/12 - 생일보다 잊으면 더 민망한 그리스인의 '이름 날')

원래도 그리스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워낙 많기 때문에 축하 받을 여성들의 수가 많은데, 이 날은 이 이름만 축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빠나율라' '빠나요따' '까쏠리끼' '끼끼' '데스피나' '마리아나' '매리'등의 이름을 가진 여성들도 축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수가 그리스 여성의 거의 과반수에 달하게 되고, 어떤 이들은 "'마리아' 혹은 이와 관련된 이름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쩌면 그리스 여성의 70% 이상일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적은 수의 남성들도 이 날 축하를 받기도 하는데, 마리아와 관련된 이름인 '마리오스' '빠나요디스' 등의 이름을 가진 남성들입니다.)

이 자료는 언제 통계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인터넷에서 "도대체 그리스엔 얼마나 많은 마리아가 있는 것인가?" 라는 자료로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인들을 표본 조사한 그리스에서 흔한 이름들>입니다. 왼쪽 여성의 이름에 보면 마리아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빠나요따 역시 마리아와 같은 뜻으로 같은 이름 날을 기념하는 이름입니다. 이 도표에는 마리아와 관련된 다른 이름들은 올라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름들까지 포함한다면 과반수를 넘을 듯 하네요.

 

 

 

이런 그리스에서 살게 된 저는, 해마다 이 국경일이 다가오면 파티 준비와 선물 살 궁리로 머리가 복잡해지곤 하는데요.

그게 저희 시할머님께서 성함이 '마리아'이시기 때문에 항상 저희 집 파티에 모이는 시댁 식구들 중, 이 이름을 물려 받아 '마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고, 위에 나열한 '까쏠리끼' '데스피나' 등의 이름들도 있어서, 결국 이 날 이름 날로 축하를 받을 가까운 친척 여성들만 숫자를 세어 보면 10 명이 넘는데다가 그 안에는 시할머님, 시어머님, 시누이, 시고모님들처럼 꼭 챙겨야 하는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고, 제 친한 친구들까지 챙긴다면 그 수는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물들을 준비한다고 해도 지출은 커지고, 해마다 뭘 선물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파티 준비 역시 만만치 않게 되고요.

 

그리고 이 이름 날 축하를 꼭 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인물은, 다름 아닌 제 딸아이인데요.

주변에서도 선물이나 용돈을 챙겨주곤 하지만, 저 역시 해마다 뭘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어떻든 올해는 시어머님, 시고모님, 시누까지 각기 다른 향이 나는 향수로 통일해 선물을 준비했고, 마리아나에게는 곧 새 학년이 시작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나에겐 갖고 싶어했던 gorjuss 책가방을 선물했습니다.

어차피 9월에 새학년이 되면 작년 가방이 낡아서 가방을 사주어야 했거든요.

 

 

물론 마리아나는 이름 날 파티 전에 자신만을 위한 특식으로 만들어 준 떡볶이를 가장 좋아했답니다.^^

독일에서 떡과 어묵을 주문했는데, 안 상하고 잘 도착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올 8월 15일도 늦은 시간까지 시댁식구들이 모인 가운데에 새벽까지 파티가 이어졌고 저는 참 많은 접시를 설거지 해야 했답니다.

 

하지만 올해는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나 며느리인 저에게는 일이 많아 지치게 했던 가족 파티였는데, 이번 이름 날에는 시댁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제 이야기도 함께 나누면서 다들 그리스인들의 성수기인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오랜만에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그냥 그 사람들이 모두 이젠 시댁가족이 아닌 제 피붙이처럼 가까운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운정이든 고운정이든 자주 부대끼다 보면 이렇게 애정이 생기는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축하를 받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이름 날이었지만, 처음 그리스에 이민 왔을 때엔 낯설었던 이들에게 진심을 쏟은 시간들이 쌓여 나로 하여금 상대에 대해 속이 꽉 찬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한 감정을 갖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명 처음엔 시고 떫은 마음으로 파티에 앉아, 남편 때문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마주하고는 있지만 도무지 정 붙일 수 없었던 그들이었는데 말이지요.

 

앞으로도 어떤 순간엔 이들 때문에 서운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순간엔 화가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 그런 것이 없는 관계라면 과연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달랐던 시댁식구들에 대한 마음 때문에, 이번 국경일은 축하 선물을 바리바리 사야 하고 파티를 열어 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그저 그런 일상들처럼 편안하게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축하를 해줄 사람이 많다는 것도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만큼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일테니까요.

 

 

 

여러분, 함께 나누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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