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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남편이 계산에 머리 뜯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6. 30.

 

 

 

 

세금 비율이 높고 종류도 많은 그리스에서는 회사든 개인이든 대부분 개별적으로 회계사를 두고 소득과 세금 관리를 해야만 합니다.

 

 ⊙ 그리스의 세무 제도는 이래요.

 

사업자의 경우엔 반드시 영수증 혹은 세금 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데, 세금계산서야 수기로 발행하더라도 사업자 번호와 상대의 세무 번호가 남기 때문에 투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에서 주민등록번호 보다 AΦΜ라고 불리는 개인의 세무 번호가 훨씬 중요한 번호로 취급되어, 그리스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이 AΦΜ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필수 입니다. 그 만큼 이 번호를 요구하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금계산서가 아닌 일반 영수증을 발행할 때도 그것을 발행하는 기계가 회사마다 관할 세무서에 등록된 기계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을 속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영수증 마다 기계의 고유 코드가 찍힙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세금계산서나 세무서에 등록된 기계에서 발행하는 영수증이 아닌 수기로 쓰는 간이 영수증은 거의 취급하지 않습니다. (학원비 등도 부모의 세무 번호AΦΜ를 학원에 등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굳이 그리스의 세금에 대해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라도, 물건을 사고 그 영수증만 살펴 봐도 그리스가 세금 비율이 높은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영수증에는 구매한 품목별로 부가가치세가 몇 % 포함되어 있는지 각각 표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리스의 물건에 붙어 있는 부가가치세는(한국은 다들 알고 있듯 2014년 현재 10%입니다.)는 지자체나 도시 별로 다르게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아테네의 경우 부가세가 21%가 세금으로 부가되고, 로도스의 경우 16%가 세금으로 부가됩니다. (음료 등 일부 품목은 비율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도스의 물가가 아테네보다 더 비싸다는 것은 이곳이 아테네보다도 '관광'을 더 크게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 계산으로 머리가 터지려고 하자 동수 씨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리스는 전년 회계연도(1월~12월)의 종합 소득 및 회계정산을 다음해 6월 말까지 해야 하는데요.

(한국은 일반 회사원들의 연말정산 시기와 사업자의 종합소득 정산 및 신고 시기가 다르지만, 그리스의 경우 대부분 직업군이 이 시기인 6월에 소득 및 지출을 정산해서 8월쯤에 납입할 종합 소득세 내역과 세금 고지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 저는 이 일을 마무리 하느라 - 다른 업무들도 있고 마리아나 학원도 데려다 주고 오고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 매일 12시간을 사무실에 근무하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회사간의 거래 세금계산서와 발생한 수입 영수증 금액들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이 밀리지 않게 제가 다달이 정리해서 그때그때 회계사무소에 맡겨 처리하였지만, 그 밖에 개인적으로 사용한 영수증들과 병원 약국 등의 영수증을 따로 계산해서 정산해야 하는데, 저희는 가족 사업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일반직원이 아닌 가족들의 것만 맡아서 하는데도 제가 처리해야 하는 영수증이 사람 수 대로 상당한 양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저희 시아버님 영수증은 평소 시어머님께서 모아 두셨었는데, 그 영수증을 세목 별로 나누고 계산하기도 전에 펼치는 데만도 저는 지쳐 나가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님...다음엔 펼쳐서 모아 주세요! 부탁이에요ㅠㅠ"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엔 유난히 사무실에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서, 저는 일을 방해 받지 않으려고 원래 잘 안 쓰는 자리인 사무실 가장 구석에 앉아 엑셀 프로그램에 숫자를 끝없이 입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그 자리는 에어컨 바람이 잘 닿지 않는 자리라, 더운 그 구석에 앉아 세목을 분류하기 위해 그리스어가 가득한 영수증들을 눈 빠지게 들여다 보며 끝없이 엑셀에 숫자를 입력하다 보니, 한숨을 절로 푹푹 나왔고 한번 씩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는데요.

 

그런 제 모습을 오다 가다 지켜 본 동수 씨는 제게 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무래도 한국의 오래된 계산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니? 그게 더 빨리 계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의 오래된 계산도구라니?"

"그 왜 있잖아. 이렇게 큰 구슬 같은 게 많이 달려 있는데 아래 위로 엄지와 검지로 막 튕기며 사용하는 계산기!"

"...지금 주판 말하는 거야????"

"아! 그래. 그거!! 예전에 한국 TV에서 그걸 엄청나게 빠르게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데, 너도 지금 그게 필요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한국 사람이라고 다 주판을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엑셀이 이렇게 정확하게 계산해 주는데 뭐 하러 주판을 사용하겠어. 어차피 서류를 만들려면 또 엑셀에 입력해야 할 걸. 물론 내가 어릴 때 주산학원이 유행이어서 나도 한 동안은 가서 배운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고.

게다가 한국 회사의 행정 부서들도, 내가 17년 전에 회사를 처음 다닐 때에도 다들 엑셀이나 계산기를 사용했었지 주판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물론 한국에서는 현재에도 주산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고 간혹 주판이 계산기보다 편한 대단한 능력자들도 있지만, 한국사람이라고 다들 주판을 그렇게 손가락이 안 보이게 잘 사용할 거라는 상상은 버려줘~~나도 그런 능력이 내게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아! 그런 거야? 난 한국 TV에서만 봐서, 한국인들은 누구나 그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사실은 주판(그리스어로 Άβακας 아바카스)이 그리스와 인근 지역에서 먼저 유래된 거 알아? 그래서 한국에서 봤을 때 정말 신기했었어!"

 

"정말??? 아!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

 

 

* 동수 씨의 말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주판(수판)은 고대 바빌론으로 부터 시작되어 BC 5~6세기에 고대 이집트, 그리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고 AD 15 세기에 중국으로 전해지며 조선 초기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en.wikipedia.org/wiki/Abacus 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수 씨 덕에, 삼십 년도 더 전에 "1원이요. 5원이요. 7원이요." 라고 낭랑한 목소리로 더하기를 불러주던 주산학원 남자 선생님의 목소리와 서툴게 주판 알을 튕기던 아이들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 해 잠시 커피를 마시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결국 주판 없이도^^ 일을 마무리 한 한국인 올리브나무 씨는 오늘 아침 회계사무소에 정리한 서류와 영수증을 다 넘기면서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리 타국에 살아도 아무리 외국 문화가 낯설어 몰라도, 그 나라 언어만 어느 정도 익힌 후엔 자신이 모국에서 갖고 있었던 경험이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고 활용할 수 있구나 라는 결론에 말이지요.

저는 그리스에 이민 온 초반에 말이 설고 문화가 설어서 가는 곳마다 참 바보 취급 받았던 적이 많았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저도 모르게 제가 한국에서 익혔던 경험들을 여기서도 활용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건 비단 이민 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학을 가거나, 같은 나라안에서도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회사를 이직 한 후에도, 처음엔 낯선 환경과 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각자가 쌓아 온 경험들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니 언젠가는 활용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낯선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해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한 7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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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예정되었던 주제의 글을 올리지 못 해 죄송합니다. 어떤 때 어떤 글은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서 안 써지기도 하더라고요. 어떤 독자의 악플 때문이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써보도록 할게요.

* 오늘 글부터 다시 답글을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그간 댓글 주셨는데, 답하지 못 했던 모든 댓글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답을 일일이 드리진 못 했지만 모두 꼼꼼하게 읽어보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여러분 늘 감사합니다! 더운데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