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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 남편, 라면은 몰라도 센스는 있다는데? 과연...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6. 17.

 

 

 

 

 

그리스 요리엔 원래 우리나라 칼국수나 소면, 라면, 냉면처럼 국물 있는 면요리가 없습니다. 파스타 종류는 많지만 다들 소스와 곁들이는 요리들이고, 국물이 있는 수프 종류는 고기와 야채, 쌀을 재료로 해 만드는 요리가 대부분입니다.

동양식 면요리 라고는 그리스의 중국식당에서 볶음 면요리 정도만 경험해보았던 동수 씨는, 그리스에 제가 여행을 올 때마다 "한국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조금만 갖다 줄 수 있을까?"라고 말을 했을 만큼 한국 면요리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살게 되어 다양한 면요리를 경험하면서 어쩜 이렇게들 맛있냐고 극찬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물 면요리에 대해 경험한 세월이 짧다 보니,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동수 씨가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국물 면요리는 만들고 바로 먹지 않으면 불어서 맛이 없다. 특히 라면은 더욱 그렇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저희가 그리스에서 와 살게 된 후 한국 면요리를 자주 해서 먹을 일이 많지는 않았고, 한국라면을 한국에서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면 아껴 먹느라고 자주 먹지는 않다 보니, 동수 씨가 그리스에 온 이후로 국물 면요리를 경험할 기회가 더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국에 있을 때는 칼국수, 짬뽕 등을 싼값에 흔하게 사먹을 수 있었기에, 식당에서야 주문해서 식사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곤 하다 보니 더더욱 이런 부분에 대해 잘 몰랐던 것입니다.

 

동수 씨가 이렇게 면요리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제가 어쩌다 국물 있는 면요리를 할 때, 면이 불기 전에 빨리 와서 먹어야 하는데 그 때마다 동수씨는 다른 그리스 요리를 먹을 때처럼 천천히 하던 일을 하다가 식탁에 늦게 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놓고는 국물이 졸아서 퉁퉁 불은 면을 보며 "어? 국물이 왜 이렇게 없어?" 라며 제게 도리어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쩌다 라면이라도 끓이는 날엔 끓이기 전부터 "지금 와서 식탁에 앉아 줘. 부탁이야. 라면은 불으면 맛이 없다니까!" 라고 자꾸 말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 또 동수 씨는 천연덕스럽게 "불어도 맛만 좋구만. 난 불은 라면도 좋아. 근데 국물을 좀 늘려줄 수 없을까?" 라는 말을 해서, 저는 나중엔 아예 라면 면만 건져 놓았다가 동수 씨가 식탁에 앉으면 국물을 부어주는 번거로운 일까지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양파와 계란은 꼭 넣어야 한다고 요구사항은 많아서, 저는 동수 씨에게 "라면이 얼마나 쉽게 불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뭘 그렇게 요구 사항은 늘 많으실까." 투덜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동수 씨는, 지난 금요일 마리아나가 3학년 종업식을 하고 저와 함께 사무실에 들렀을 때, 마리아나가 3학년을 잘 마무리했으니 선물을 사줘야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3학년을 끝내고 방학을 맞이해서 행복한, 마리아나와 친구 바실리끼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싱글벙글이었고, 도대체 뭘 사줬길래 사준 사람도 저렇게 좋고 받는 사람도 저렇게 좋은 건가 싶어 "선물이 뭔데?"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선물은 다름 아닌, 천연향수였습니다!

 

 

 

얼마 전 저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천연향수와 비누를 파는 가게가 생겼는데, - 허브와 올리브가 자라기 좋은 기후의 그리스에는 이런 가게들이 참 많습니다.- 동수 씨는 마리아나를 거기에 데리고 가서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르라고 했고, 마리아나는 자기가 평소 좋아하는 바닐라와 딸기 향을 골라 원하는 용량만큼 주문해 사서 오게 된 것입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천연 향이라서 인지 튀지 않는 은은한 향기가 나서 작은 여자아이가 뿌리고 다니기에도 괜찮겠구나 싶었습니다. 워낙 냄새에 민감한 그리스인들이라 큰 아동복 매장에도 어린이를 위한 향수들을 대부분 다양하게 판매하곤 하는데, 그런 유명한 향수들보다도 천연향이라서 도리어 더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마리아나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저는 동수 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향수를 사줄 생각을 다 했대?"

"하하. 마리아나도 이제 이렇게 많이 컸는데, 향수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소녀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이것 받아. 사면서 올리브나무 네 것도 하나 샀어."

저는 제 것까지 챙긴 것에 깜짝 놀라서 얼른 뚜껑을 열어 향수를 뿌려보았는데요.

"음! 향 좋네. 나 향수 떨어진 거 알고 있었구나?"

 

그러자 동수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흠! 부인 향수 떨어진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내가 라면에 대해서는 한국인인 너보다 잘 몰라도, 원래 센스는 좀 있잖아? 내가 좀 센스 있는 남자라고 너도 생각하지? 그렇지? 인정하지??"

 슈퍼맨

"하..하..그래. 인정...해...뭐, 인정 한다고. 아무튼 향수 고마워. 안 그래도 사러 가려 했는데 잘 쓸게."

얼굴 가득 으쓱함이 가득해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는 동수 씨에게 제가 어떻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가끔 자신을 마리아나와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항의하면서도, 또 잘한 일에 대해 옆구리 찔러서라도 제게 꼭 인정받고 싶은 '자칭 센스 있는' 동수 씨입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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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장례식은 오늘 이른 저녁 때 잘 치러졌습니다. 이렇게 하루 만에 치르는 그리스식 장례식이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참석했던 수백 명의 지인들 대부분이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못 했다고 그 어떤 장례식보다도 서럽게들 울어서, 도리어 제가 마지막 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저를 마음으로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장례식장에서 마리아의 장성한 두 자녀들이 마음껏 울도록 깊이 꼭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장례식에 참석하셨던 저희 시어머님 역시 많이 우셨는데 몇 시간 동안 제 팔을 놓지를 못 하시는 것을 보면서, 어머님이 어떤 형태로는 저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