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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오합지졸 마리아나 합창단의 발표회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6. 13.

 

 

 

 

"엄마! 합창단을 꼭 하고 싶어요! 부탁이에요!"

음악선생님이 작년 연말 학교에 새롭게 부임해 오셨고, 의욕 넘치며 어딘가 예술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다소스Τασος 선생님은 학교 합창단을 새롭게 만들어야 겠다고 3,4,5,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급마다 다니시며 목소리 오디션을 보셨습니다.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다가 합창단 참가 권유를 받게 된 마리아나는 합창단을 하고 싶다며 저를 졸랐지만, 합창단 연습 시간이 방과 후이고 연습 요일이 영어학원 시간과 조금 겹쳐서 저는 좀 회의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나. 네가 합창단을 하면 내가 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얼마나 바빠지는지 알아?

알잖아. 여긴 법이 그래서 네가 어딜 가나 엄마가 함께 다녀야 한다는 거. 게다가 합창단을 하게 되면 영어 학원 시간도 조정해야 하고, 특히 월요일에는 넌 점심을 4시가 다 된 시간에 그것도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5분 내에 차에서 먹어야 하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겠니?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려 하는지 난 참 모르겠다."

 

솔직히 이렇게 만류를 한 또 다른 이유는, 저는 딸아이가 나름의 흥이 있는 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특별히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나가 좀 더 어렸을 때 녀석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보려고 제가 직접 시도해보기도 했었고 친구인 피아노 선생님을 통해서도 여러 번 시도했었지만, 만들기나 그림을 그릴 때는 4시간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녀석이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5분을 버티지 못 할 만큼 흥미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박자 감각도 부족하고 노래를 해도 음정 박자가 불안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에 이사오며 피아노도 처분하고 왔으니 이제는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 그냥 내버려두었었습니다.

 

그런데 합창단을 하겠다며 저를 설득하는 녀석의 결정적인 말에 저는 그만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초등학교 때나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재미있는 클럽활동 많이 했었다면서요. 엄마가 그랬잖아요. 합창단도 했었고, 학교 축제 준비를 한 적도 있고, 대본 써서 친구들과 연극을 한 적도 있었다면서요. 엄마는 그렇게 여러 클럽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었다고 그랬잖아요. 나도 엄마처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릴 때를 즐겁게 추억할만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나랑 제일 친한 친구들도 함께 합창단을 하니 얼마나 많은 추억이 쌓이겠어요?"

 

뜻밖에도 딸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었고, 결국 합창단 활동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합창단 연습이 끝나길 음악실 밖에서 다른 부모들과 기다리며,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아이쿠 이 오합지졸들을 선생님은 어떻게 나중에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음악선생님! 고생이 정~~말 많으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합창단 개설 이후 몇 달이 지나도록 아이들은 음정도, 박자도, 전혀 맞지 않았고, 뽑힌 아이들 중에 부모가 바빠 큰 돌봄을 받지 못 하는 아이들은 연습에 빠졌다 나왔다 해서 정말 몇 년이 걸려야 제대로 소리나 낼까 싶게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합창단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음악을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리스에 오기 전에 부족하지만 뮤지컬이나 연극 대본을 써서 청소년들을 지도해 작은 공연들을 해본 적이 있어서, 이 합창단이 참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제 딸 마리아나부터도 음정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아, 선생님께 죄송할 지경이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아이들을 오디션에서 뽑으셨는지 알 수가 없어 선생님의 음악 철학이 궁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전, 인근 10개 초등학교까지 모인 큰 무대에서 마리아나의 합창단이 발표회를 한다고 했을 때, 기대와 걱정을 안고 보러 가게 되었는데,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은 몇 달 만에 그럭저럭 화음을 맞추며 악보도 볼 줄 알게 되었고 매끄러운 목소리들은 아니었지만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습니다.

(역시 새 음악선생님께서는 탁월한 지도자시구나 싶었습니다!)

  

약 500 명 정도의 관객이 있던 자리였는데, 첫 무대에 서게 된 아이들은 수줍음이 가득했습니다.^^

신설 합창단 답게 다른 학교와 달리 옷도 제각각이었고요. 분명 청바지에 흰 상의라고 의상 공지를 했지만,

아마 부모님이 신경쓰지 못 한 아이들이 있는 듯 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마리아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자유롭게 노래하는 아이들로부터 이상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특히 수줍음 많은 마리아나는 노래 4곡 내내 파일로 얼굴을 다 가리고 노래를 해서, 동수 씨가 "아하하하! 마리아나! 그렇게 창피했던 거야?" 라며 호탕하게 웃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학교 안의 작은 원형극장에서 '극장문화 과목 선생님과 함께한 6학년 졸업반 연극 발표회'와 함께 마리아나의 학교 합창단의 발표회도 있었는데요.

 

노래하는 합창단 아이들을 보며 저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몇 달을 연습한 결과물이 결코 완벽하지도 않고 잘 하는 것도 아직은 아닌데,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노래를 하는 아이들은 잘 해야겠다는 부담감과 틀에 박힌 경직된 자세가 아닌 진심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는 듯 보였고, 그것은 반주를 하는 선생님도, 리코더를 연주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노래를 하고 음악을 한 사람들도 어떤 땐 갖기 어려운 '즐기는 음악'을 그 아이들은 하고 있었습니다.

오합지졸이었던 아이들의 감동적인 발표회는, 저도 '즐기는 글쓰기'와 '즐겁게 일하기'를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즐기는 마음'과 '잘 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지양하고 싶어졌습니다.

 

 

 
 
마리아나의 합창단 아이들은 이날도 총 4곡을 불렀는데,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밀로 무 꼬끼노(Μήλο μου Κόκκινο빨간 내 사과) 라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의 노래는 서툴지만, 동영상 끝부분에 보면 관객들은 부모 마음으로 박수로 환호해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나의 학교와 이 작은 원형극장은 건축한지 100년이 넘어 저희 시어머님도 이곳을 졸업하셨다고 합니다.)
 

  

 

발표회와 졸업반 연극까지 모두 끝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온 마리아나는 뜻밖에도 저에게 이런 이야길 했는데요.

 

"엄마, 기분이 정말 이상해. 이제 긴장했던 모든 발표회가 끝이 났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좋기도 하고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엄마. 이게 무슨 기분이야?"

 

"음...한국 옛 노래 중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라는 노래가 있는데,

네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가 보구나."

 

 

 

"아! 나 그 노래 런닝맨에서 들어봤어요!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이런 노래지요?

그 노래가 이런 기분에 대해 말하는 뜻이에요???"

 

"어머! 너 그렇게 오래된 노래를 다 들어봤니? 신기하네.

암튼 엄마는 너와 네 친구들이 참 자랑스럽다. 정말이야.

그리고 네가 원했던 대로 좋은 추억도 많이 쌓였겠지?"

 

"네! 정말 그래요.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좀 쑥스러웠지만,

지금 이 이상한 기분만 빼면 최고였어요!"

 

'어떤 일에 최선을 다 한 후 그 끝에 오는 성취감과 허무함'제대로 배워가는 중인 마리아나입니다.

저는 한참 더 커서 알게 되었던 감정들인데, 그런 인생의 좀 더 성숙한 감정들을 배워나가며 성장하는 녀석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줘 봅니다.

 

참, 어제 학교 운동회에서 음악선생님을 지나다 뵈었는데, 목소리 오디션으로 합창단 아이들을 뽑은 기준은 '현재의 음악적 재능이 아닌 가능성' 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역시... 멋있는 선생님입니다! 

 

 

여전히 가능성 많은 여러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티스토리 초대장 신청은 여전히 받고 있고, 반드시 이메일을 남겨주셔야 발송이 가능하답니다.

* 답글도 포스팅도 자주 못 써서 참 죄송합니다. 제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나 오랜만의 안부들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답을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