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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깨끗하게 김 자르는 법, 그리스에 와서 발견하다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11.

 

 

보통 다른 서양 국가들처럼 그리스에서도 음식을 자르는 용도로 가위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어서 가위를 식탁에 갖고 올라오지만 않으면, 요리할 때 부엌용 가위로 어쩌다 무언가를 자른다고 해서 크게 뭐라고 하는 분위기는 분명 아닙니다.

 

제게는 한국에서부터 쓰던 오래되었지만 좋은 부엌용 가위가 있어서 이 가위를 늘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곤 하는데요.

이렇게 부엌용 가위 사용이 적고 웬만한 식재료는 칼로 자르는 문화이다 보니, 이 부엌 가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 가족들이 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매니저 씨는 제가 분명히 일반 가위를 어디에 따로 두었는지 말을 해주었어도, 뭔가 자를 일이 있어 일반 가위를 찾을 때면 어김 없이 "올리브나무! 올리브나무! 올리브나무!" 엄청 저를 찾다가, 제가 다른 일을 하느라 찾아 주는 게 늦어지면 냉큼 부엌 가위를 꺼내 아무 용도로나 써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어... 어째 당신은 뭐가 어디에 있다고 그렇게 말 해 줘도 모를까!!"

안습

싶다가도, 자기 부모님 생신도 제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해서 뭐하나 싶어 어느 순간부터 잔소리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매니저 씨가 이 부엌 가위를 사용한 후에, 결코 제자리에 돌려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썼으면 설거지 하게 개수대에 놔 두라고 아무리 얘길 해도 가위는 매니저 씨 손에만 가면 늘 책상에서 발견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김을 아주 좋아하는 저에게, 부모님은 한국에서 물건을 부쳐 주실 때 꼭 잘라지지 않은 전장으로 된 김을 같이 넣어 주시곤 하는데요.

어느 날 제가 김을 자르려고 아무리 가위를 찾아도 부엌 가위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매니저 씨가 다른 용도로 쓰고 어딘가에 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찾다가 찾다가 지쳐 김을 포장봉지에 넣은 상태로 여러번 꾹꾹 눌러 접어서 잘라 통에 담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접어서 자르는 방식은 가위가 없어도 되어 좋기는 한데, 잘린 면이 고르질 않아서 먹을 때 김 부스러기가 더 많이 생기고 접는 과정에서 김이 눌려 밥에 김을 싸려 할 때 김이 좀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저는 이 방법을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요.

 

그러다 다른 날, 찾아 두었던 부엌 가위가 없어졌고 저는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김을 손으로 찢어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이렇게 잘라 보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식칼로 말이지요.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해 보자 싶어,

 

전장김의 포장봉지를 뜯어 펼쳐서 그 위에 김을 놓고,  

 

 

식칼로 과감하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을 잘랐습니다. 

 

 

 

세상에나~~~!!!!! 

헉

 

이제껏 가위로 김을 자를 때나 포장봉지 채접어서 잘랐을 때의 그 어떤 김 자르는 방식 보다 더 깔끔하게 김이 잘려나간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요.

게다가 식칼은 부엌 가위보다 칼날이 길어서 훨씬 단숨에 빠른 속도로 잘라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깔끔하게 눌림 없이 잘리다 보니 부스러기도 덜 떨어지고, 통에 담아 밥과 함께 먹을 때도 김이 훨씬 덜 부서지는 게 아니겠어요?!!!  

 

 

 

분명 한국에 계신 누군가는 이미 이런 방법으로 김을 잘라 드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로서는 완전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습니다.

샤방3

그 이후로는 아무리 부엌 가위가 제자리에 있어도!

김은 반드시 식칼로 잘라서 먹게 되었습니다.

식칼로 잘랐을 때의 김의 깔끔한 상태와 자르는 시간 단축을 경험한 후로는 가위로 자르거나 포장 채로 접어 자르는 방법은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식칼로 자를 때의 주의 점은, 방습제를 미리 빼 놓아야 하고 칼을 꼭꼭 눌러 잘라 주어야 마지막 장까지 잘 잘린다는 점인데요. 한 두 번 잘라보면 감이 와서 금새 익숙하게 자를 수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평생 잘라 먹던 김을 그리스에 와서야 깨끗하고 빠르게 자르는 법을 발견한 제가 우습기도 했지만

결국 부엌 가위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곳의 문화 덕에 불편함을 극복하려다가 발견한 것이라, 역시 발견이란 것은 불편함이 있어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저처럼 김 부스러기가 많이 나오는 게 싫고 잘 잘린 김의 깔끔한 식감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식칼로 김 자르는 방법을 한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맛있는 것 많이 드시는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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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오늘 오후부터 또 쓰도록 할게요~^^여러분의 댓글들을 얼마나 재미있고 감사하게 읽고 있는지 혼자 낄낄거리다가 미소 짓다가 감동하다가를 반복하곤 해서, 옆에 있던 딸아이가 저를 이상하게 볼 때가 많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