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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인을 수줍게 하는 한국의 칭찬 도장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11.

 

 

 

그리스인들은 일반적으로 공문서를 비롯한 중요 서류에 서명(사인)을 하고 인감 등의 개인 도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은행 업무를 볼 때나 회사 일을 할 때 사인을 해야 할 일이 자주 있었지만, 아예 개인 도장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에 오니 더욱 사인을 할 일이 많아졌는데요.

처음엔 그리스엔 아예 도장이 없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생활에 익숙해지고 공문서를 다루는 서류 업무를 할 일이 많아지자, (특히 그리스 관공서는 불필요한 서류를 많이 구비하도록 체제화 되어 있어 아주 연세가 많으신 노인들께서도 제출용 서류철을 들고 다니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일반 회사 명판, 관공서 고유 명판 등은 레이저를 이용한 기계로 판 도장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보통 좀 규모가 큰 문구점이나 서점, 복사 제본 가게에 가면 이런 류의 도장을 만들어 주는 기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회사 명판 도장 광고

  

물론 한국의 경우 중요 공문을 발행할 때, 회사 명판을 찍고 그 옆에 회사 직인을 찍도록 되어 있지만, 그리스의 경우 회사 명판 옆에 서명(사인)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회사 명판과 직인

 

     

그리스의 공문서 명판과 사인, 회사 명판과 사인 (υπογραφή이뽀그라피)

 

즉, 그리스에서는 공적인 목적으로 개인 도장을 사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도 문구점이나 장난감 매장에 가면, 각종 꾸미기 용도의 도장들은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리스에서도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저학년 아이들의 쪽지시험 류의 테스트를 체점할 때, 잘 했다는 개인 서명을 하고 그 옆에 위의 사진과 같은 예쁜 도장을 찍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늘 숙제가 많고 매일 테스트 준비를 해야 하는 딸아이에게나 그리스인 제자들과의 한국어 수업에서 숙제 검사를 할 때, 수고했다는 의미로 이런 곰돌이, 토끼, 공주 등의 예쁜 모양이 있는 도장을 함께 찍어 주곤 했었는데요.

그 때마다 한국의 '참 잘했어요.' 도장이 자꾸 생각났던 것입니다.

대 놓고 칭찬하는 글씨가 쓰여있는 도장을 찍어 주면 저는 물론, 도장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문구점이나 서점에 들를 때마다 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유심히 살폈고, 귀여운 모양의 도장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에 돌아와, 그 도장을 디미트라 양과 수업을 할 때 처음으로 보여주고 숙제 끝에 찍어 주었는데요.

 

이것은 어제 한국어 수업 때 찍은 도장인데요. (그리스는 일/월/년 순으로 날짜를 기록합니다.)  

문장을 만들 때 틀렸던 단어를 반복해서 써오는 숙제였습니다.

 

 

반응은 생각보다 정말 격했습니다.

얼굴까지 발그레해지며 그 도장에 쓰여진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수줍어하는 게 아니겠어요?

샤방3

아니, 그 전에도 분명 손 글씨로 '참 잘했어요!' 라고 써 주곤 했었는데, 이 도장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좋아하나 싶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격한 반응은 다른 제자인 갈리오삐 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리오삐의 숙제입니다.

역시 문장을 만들 때 틀렸던 단어를 반복해서 써오는 숙제였습니다.

 

어제도 숙제 검사를 하며 도장을 찍어 주는데, "쌤, 정말 좋아요!"라며 수줍어 하는 게 아니겠어요?

ㅎㅎㅎ아이고 귀여운 아가씨들!

  

또한 그리스 초등학교는 공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어, 아이들이 운동, 언어, 예체능 학원을 다니지만 보습학원에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도 벅찰 때가 많은데, 보통 하루에 30~40개의 새로운 단어를 외워야 하고 별도로 2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숙제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보니, 제 딸아이도 개학하자마자 매일 이어지는 받아쓰기와 수학 테스트로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저는 아이가 공부를 한 연습장에서 틀린 부분이 있는데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마구 남발해 주었습니다.

 

제가 도장을 남발한 딸아이의 연습장입니다.

이 도장은, 혼자 스트레스 받아 훌쩍 거리던 아이의 눈물을 뚝! 그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정말 좋아하면서 "엄마! 나, 그렇게 잘 했어?" 신나 했고, 저는 도장을 25개 모으면 예쁜 스티커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도장을 마구 찍었더니, 금방 25개를 모을 것 같습니다.^^;;

 커피한잔

한국어로 된 '참 잘했어요' 도장이 그리스인들을 수줍도록 기쁘게 하고 딸아이도 들뜨게 만드는 것을 보면, 도장으로 만들어진 칭찬이라 개인 도장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에서는 더 공적으로 칭찬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아닌가 싶고, 이 한국의 도장이 새삼 참 고마운 도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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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동안 답글을 열심히 써 볼게요. 늦어져 죄송해요*^^*

* 아름다운 여러분, 제가 신고 하지 않게 댓글도 아름답게 쓰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