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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외국인 남편이 요새 심취한 안녕하세요! 놀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1. 20.

 

 

 

그리스에 살다 보니 한국어를 많이 잊은 매니저 씨가, 제가 그리스인 제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교재를 만들고 있으면 불쑥 고개를 모니터 앞으로 들이밀며, "흥! 이것쯤은 나도 아는 내용이라고!"라고 당치도 않는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워 모를 텐데 싶어 "그래? 그럼 한 번 읽어 봐." 라고 말을 하면, 읽다 말고 발음이 막 꼬이니 그 두꺼비 같은 손으로 모니터를 막 쓱쓱 문지르며 "뭐야, 뭐 이렇게 어려워?" 라며 무안해 하곤 합니다.

 

 

그런 매니저 씨이지만 여전히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한국어들이 있는데, 한국에 살 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회식하며 배운 한국어 욕들과 다양한 한국어 인사말들입니다.

한국어 이야 요즘 크게 사용할 일도 없고, 어쩌다 일이 안 풀릴 때 혼잣말로 사용해도 정말 폭소만발이라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매니저 씨 발음이 좀 이상해서 자꾸 신발을 찾고 그러니 말이지요.ㅎㅎ 그리스인들이 한국어에 ㄴ을 잘 붙인다고 말씀 드린 적 있지요?), 요새 이상하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말로, 혼자만의 놀이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나갈 일이 있을 때나 헤어질 때, 저희 부부는 그 동안 한국어로 "안녕!" 이라며 헤어질 때가 많았는데요.

요즘 들어 매니저 씨는, 제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면 똑같이 "안녕" 이란 말대신 자꾸 "하세요!" 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 사람이 지금 뭐래?' 싶었는데요.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안녕"하고 헤어지는 인사를 했는데, 돌아서는 제 등뒤에다 혼자 대답으로 "하세요!" 하고 가버리면, "안녕히가세요"도 아니고 꼭 만나는 인사 같고,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왜 그래? 그러지마."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거듭되며 저는 더 이상 매니저 씨에게 그 "하세요!" 라는 애들 같은 덧붙임을 하지 말라고 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못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한번 상황을 재현해 보겠습니다.

 

올리브나무 : (그리스어로) "그래. 외근 나간다고? 잘 다녀 와."

매니저 : (그리스어로) "응. 간다."

올리브나무: (한국어로) "안녕!"

매니저 : (한국어로) "하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0.5초 정도 쉬었다가) 우하하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국어로)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헉다,당신, 드디어 미친 거야? 그런 거야? 그렇게 재밌어?

 

저는 매니저 씨의 그 혼자 대답하고 혼자 웃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매니저 씨의 혼자만의 놀이는 회를 거듭할수록 웃음 상태가 광란의 상태로 바뀌어서, 한국어 인사말을 모르는 누가 봐도 혼자서 이 게임을 즐기고 있음을 역력히 알 수 있게 이상해 보이지만,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매니저 씨를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지라 시아버님도 혀만 끌끌 차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놀이를 좀 자제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날 사람들이 바글바글 왁자지껄 모여 파티가 무르익었을 무렵, 매니저 씨는 가볍게 와인도 한잔해서 기분이 몹시 좋은 상태였는데요.

손님 대접한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정신 없던 저와 매니저 씨가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저는 그러고 보니 손님 맞이하느라 바빠서 오늘 퇴근 후에 인사도 못 해줬다 싶어 저도 모르게 매니저 씨에게 손을 들며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매니저 씨는 마치 제가 그 말을 해주기만을 백만 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이 떠 나가도록 "하세요!" 라고 대답을 하곤, 이어서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습니다.

헉헉4

옆에 앉아 계시던 시부모님, 고모님들, 친척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그 표정이 웃겼던지 매니저 씨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은 계속 이어졌는데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고 있는 매니저 씨를 보고 시아버님은 더 이상 못 참으시고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그만! 오늘 달이 보름달도 아닌데, 넌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부탁인데 일할 때 이러지는 정말 말아라!"

안들려

(평소에 아버님은 제게, 매니저 씨가 한번씩 획 돌아 불같이 화를 낼 때면 "오늘 달이 보름달이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라..." 라고 말하곤 하십니다.ㅎㅎ)

 

 

어떻든 저는 그 날 이후로, 매니저 씨에게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말 하는 횟수를 현.저.히. 줄였습니다.

정말 일하다가 혹시 저렇게 정신줄 놓고 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엉엉

 

하지만 이 혼자만의 놀이가 지루해져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 그 땐 다시 한국어로 인사를 해야겠지요?

"안녕"은 '신발' 보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한국의 좋은 인사말이니까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혹시 제 블로그에서 보신 첫 글이 이 글인 분들께, 남편 매니저 씨가 미친 사람은 아님을 밝혀두는 바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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