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오기 전에도 유럽인들이 냄새에 민감하다는 것은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손님 맞이를 하려고 요리를 한 후, 손님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에 음식 냄새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든가, 땀냄새를 비롯한 어떤 불쾌한 체취를 풍기지 않기 위해 향수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방향제를 사용한다는 것을 매니저 씨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매니저 씨는 신발에 뿌리는 방향제, 몸에 뿌리는 방향제를 향수 외에도 따로 갖고 있었고, 이런 특화된 제품들을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그리스 가족들에게 택배로 받기도 했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동안에도 그리스를 자주 왕래하며 저는 어느 정도는 냄새에 민감한 유럽인, 혹은 그리스인들에 대해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에 아예 이민 와서 살게 되니, 그리스인들이 냄새에 민감한 정도가 제 예상을 뛰어 넘게 지나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한 후 음식 냄새가 집안에 배지 않게 하기 위해, 고기나 생선 요리나 조금 더 냄새가 많이 나는 구이나 튀김 종류는 아예 집 밖에 위치한 부엌에서 요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도 평수가 넓은 경우 배란다 쪽에 간이 부엌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리스의 아파트들은 평수가 좁더라도 굽는 요리를 위해 바비큐 그릴을 베란다에 놓고,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집이 좁은 경우 갖은 방법을 동원해 요리 후 냄새를 제거하곤 합니다.
저희 집도 고양이들이 늘 올라가 있는 바깥 부엌이 뒷마당 쪽에 있는데요. 타운하우스처럼 비슷 비슷하게 지어진 저희 동네 200가구의 집들은(우편함이 200개가 모여 있으므로 가구 수를 알 수 있답니다.) 모두 이 바깥 부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시 외곽에 자리한 더 큰 저택들은 이 바깥 부엌도 상당히 화려하게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이 바깥 부엌은 지붕 공사를 시작해서 완전 새 모습으로 안팎을 단장 중에 있습니다. 다 완성 되면 사진 올릴게요~
늑대군이 앉아 있는 모습 보이시지요? 눈을 가늘게 뜨니 정말 늑대같아 보여요^^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은 바비큐 그릴을 이용하든지 바깥 부엌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요리하곤 합니다.
사실 저희 집 뒷마당 쪽 물건은 대부분 시부모님 물건이라 괜히 불편해 저는 이 바깥 부엌을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인데, 그 대신 집 안에서 감자 튀김이나 야채볶음 등 비교적 냄새가 덜 나는 요리를 하더라도 모든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돌리고 환기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방향제, 향초까지 온갖 방법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요리를 한 후 잠깐이라도 집에 들르는 그리스인 손님이 있을 경우 대부분 이 음식냄새에 대해 인상을 쓰는 등 어떤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방금 했는데, 음식 냄새가 나지 말아야 하다니요…"
제가 한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 디미트라 집에 가는 경우 늘 그녀의 집 부엌 식탁에 마주앉아 수업을 하는데, 그리스 시간으로 늦은 점심 시간인 메시메리 직후인 5시 반 수업을 1년을 넘게 하며, 단 한번도 그 집 점심 요리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면 믿으시겠어요?
이로 아주머님께서 늘 방향제나 향초를 이용하시기 때문에 말해 주시지 않으면 점심으로 이 가족이 뭘 먹었는지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여전히 냄비나 오븐에 음식이 남아 있는 경우에도 말이지요. 오늘도 제가 수업을 시작하니 그제야 향초를 끄시더라고요.
이런 냄새에 민감한 그리스인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 중 하나가 냉장고인데요.
그러니까…
음식을 보관하라고 있는 냉장고인데 거기에 음식 냄새가 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그리스에 이민 와서 이 믿을 수 없는 사실과 마주하며, 어떻게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에서 음식 냄새가 안 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음식 냄새가 안 나게 냉장고를 관리하며 깨달은 사실은, 일단 그리스인들은 밑반찬이나 장아찌, 젓갈, 김치 등의 냄새가 강한 저장식품 종류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저장식품이라고 해 봤자, 갖가지 방법으로 담근 올리브들인데, 이 올리브들은 크게 냄새가 나질 않습니다. 그 밖에 쨈이나 버터 캐첩 마요네즈등이 소스 종류나 한 달 이상 보관하지, 그 밖의 남은 음식들은 상하지 않아도 일단 냄새가 냉장고에 밸 만큼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름 날씨도 뜨거운 곳이라 상하지 않는 음식도 이틀 안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즈, 햄 등도 방부제가 거의 첨가되지 않은 식품들이라 사흘이 넘어가면 신선도가 떨어져서, 특별한 치즈 종류를 제외하곤 그 안에 먹을 만큼만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니 사실 냉장고에 냄새가 나게 만들 음식 거리 자체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가끔 한 포기씩 만 담는 김치도 냄새가 밖으로 잘 새지 않는 용기에 나누어 담아 빨리 먹고 치우려고 노력합니다.
김치가 익기 시작하면서 냉장고를 열 때 조금이라도 그 냄새가 나게 되면, 거실에 앉아 있던 손님들까지 이구동성 이게 무슨 냄새냐고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인 손님이 자주 오는 저희 집의 김치는 대부분 익기 전에 빨리 먹어 버리는 경우가 많답니다…
이렇게 음식 냄새가 안 나도록 냉장고 관리를 하면서, 첨엔 그렇게 불편하더니, 이제 저도 모르게 그리스인들에게 길들여져 버렸구나 느꼈던 일이 있었는데요.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였습니다.
부모님 댁에서 저희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깔끔한 엄마 성격대로 잘 정리된 냉장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밑반찬 냄새와 김치 냄새가 새어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냉장고를 다시 열어서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뭔가를 버려야 하나 눈으로 막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야 만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아! 나에게 한국음식 냄새까지 없애고 싶어 하는 이상한 냄새결벽증을 옮겼구나!
냉장고 악취도 아니고, 이 향기로운 밑반찬과 신 김치도 아닌 적당히 익은 김치 냄새였을 뿐인데,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는 저 자신에게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그리스에 와서 코가 예민해지긴 딸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오후 일하다 잠시 들어와 부랴부랴 요리를 해서 가게에 갖다 주고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데, 늘 그렇듯 몸에서 음식 냄새가 나면 안 되므로 요리한 후에 은은한 천연 향이 나는 향수를 몸 여기 저기 뿌리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만난 딸아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수 냄새 사이로 남아 있는 음식 냄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딸아이가 하는 말은…
"엄마! 오늘 기마 마까로냐(갈은 고기와 토마토 소스로 만든 그리스식 볼로네제 스파게티) 만들었지?"
"너.. 너..너.. 어떻게 알았어?"
"흠~ 냄새를 찾아냈지~~~"
참…요리를 한 후 매번 샤워를 다시 하고 나갈 수도 없고, 향수를 바꾸든 무슨 수를 내야겠습니다.
찌개 냄새, 김치 냄새 좀 집에서 나도 괜찮은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구나~~~ 문득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
여러분, 유럽 여행을 오시게 되면 만약을 대비해 향수는 꼭 챙겨 다니시면 좋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어제 못 쓴 답글은 오늘 오후 모두 쓰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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