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딸아이와 월요일에 있을 수학(산수) 시험공부를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문제 하나가 있었습니다.
Ο παππούς έδωσε στο Στέφανο για γιορτή του 50€ και η γιαγιά 25€. Πόσα χρήματα πήρε συνολικά ο Στέφανος; 할아버지는 스테파노스에게 명명축일(이름날) 선물로 50유로를 주었고 할머니는 25유로를 주었습니다. 스테파노스가 받은 돈은 총 얼마인가요? |
그렇습니다. 그리스 문제집 지문에서 손자가 축하 받을 일이 있다고 50유로(한화 약 75,000원)를 주는 할아버지에 대해 예를 들 정도로, 그리스 조부모들은 한국의 조부모들처럼 손자 손녀를 오랜만에 만나거나 특별한 날이 되면, 돈을 손에 꼭 쥐어줍니다.
저는 이런 문화를 처음 접했을 때 사실 깜짝 놀랐었는데요.
비교적 더치페이 문화도 잘 형성되어 있는 그리스인들이기에 아무리 가족문화가 발달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손녀 손자에게 직접 쌈짓돈을 쥐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에 오기 전 다른 서양 문화에서 많이 접하지 못했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을 주는 그리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정말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그리스 부모들은 우리나라 부모 이상으로 자녀에게 상당히 헌신적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시집 장가 보내며 다 퍼주고 난 후, 당신들은 정말 작은 집을 구해 독거 노인으로 사시는 경우도 참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그리스에는 연금제도가 잘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젊을 때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노후에 연금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해, 자녀들에게 생활비로 손을 벌려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만큼 당당한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연금이 넉넉하다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는 문화가 다 형성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분명히 그리스의 가족문화에 속한, 서양에서는 좀 독특한 문화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시아버님은 이번에 딸아이가 새학년에 올라가며 준비물 살게 많을 테니 쓰라며 100유로를 딸아이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물론 시어머님은 돈 대신 옷을 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니저 씨의 재미있는 외할머님은 증손녀인 제 딸아이를 만날 때마다 꼭 돈을 주십니다.
어떤 땐 5유로, 어떤 땐 10유로… 주머니에 있는 대로 꺼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명절에는 댁에서 나오실 때 미리 용돈을 준비해 오시는데요.
증손녀인 딸아이 것으로 20유로, 손자인 매니저 씨 것으로 50유로, 시누이 것까지 준비를 해, 지폐를 두 번 접어 손에 꼬옥 쥐어 주십니다.
로도스 시내에서 좀 떨어진 할머님 댁에 제가 한번 모셔다 드린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기름값이라며 기름값보다 훨씬 많은 용돈을 주신 적도 있어,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고 거절을 수 차례 하다가 억지로 제 가방에 지폐를 구겨 넣으셔서 할 수 없이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안 받겠다는데도 지폐를 제 가방에 억지로 집어 넣으시는 모습이
꼭 제 돌아가신 할머니들이나 이모, 외삼촌 생각이 나게했어요...
저희 옆집에는 동네에서 괴팍하고 잔소리 많이 하기로 소문난 할머님이 한 분 사십니다.
바로 옆집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집안 사람들은 그 할머님을 참 좋아하지 않는데요.
잘난 척을 엄청나게 하며 싸움꾼 같은 성격을 갖고 있고 뒷말 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앞뒤가 똑같이 솔직한 저희 시어머님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할머님에 대해 가족들에게 동조해 함께 욕하지 못하고, 놀랍게 쳐다볼 때가 있는데요.
딸에게 집을 물려주고 딸네 집에 함께 사시는 할머님은 결혼한 손녀의 손자, 그러니까 증손자를 매일 봐주시는 것입니다. 아직 아기라 손이 많이 가는데도 직장생활을 하시는 손녀와 딸을 대신해 그 증손자 아기를 정말 정성을 다해 키워 주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장성한 손자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 할머님이 직접 손자의 자동차를 매일 세차하며 비가 오거나 햇볕이 강한 날 차에 커버를 씌우는 일도 늘 할머니께서 자청해서 하셔서, 그 손자의 자동차는 오래된 차임에도 불구하고 늘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그 할머님 역시 다 큰 결혼한 손녀와 손자에게 쌈짓돈을 쥐어주는 모습을 보곤 해서,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싫어하는 할머님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할머님과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곤 합니다.
세상에 손녀 손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조부모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그렇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잘 접힌 지폐를 손에 쥐어 주시는 모습이, 안 받겠다는데 가방에 억지로 돈을 밀어 넣는 모습이,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그것과 정말 닮아있는 그리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에, 저는 가끔 눈이 붉어지기도 한답니다.
마리아나가 4개월쯤, 딸아이를 정말 물고 빨고 예뻐하시는 한국의 외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입니다.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는데, 가족에게 따뜻하게 사랑을 표현하며 춥지 않은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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